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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포커스/김영용]日경제 해법은 있다, 인기가 없을 뿐

입력 | 2010-05-07 03:00:00


일본 경제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거품이 꺼진 1991년 이후 지금까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무엇이며 해법은 없는가.

미국 달러의 강세로 미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해지자 1985년 9월 선진 5개국이 플라자 합의에 의해 달러를 평가절하함에 따라 일본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고 일본 수출산업에 문제가 생겼다. 엔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은 1985년 12월 이전에 5% 이상을 유지하던 할인율을 1987년 2월에는 2.5%로 떨어뜨렸고 이에 따라 돈이 풀렸다. 통화 증가에 힘입어 1987∼1990년 민간소비는 연평균 5.6%씩 늘었고 고정자본은 10.6%씩 증가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거대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1989년 5월∼1990년 8월 5차례에 걸쳐 할인율이 6%로 오르자 거품이 꺼지면서 시장이 붕괴됐다. 이후 잘못된 처방으로 고통스러운 불황이 더욱 심화되고 장기화됐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불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실시했다. 1992년 이후 100차례에 걸쳐 총 100조 원을 경기부양 목적으로 투입했다. 1991년 7월부터는 할인율을 5.5%로 내리기 시작해 2001년 9월 이후 0.1%를 유지하고 있다. 케인스 경제학에 입각한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일본 경제는 여전히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케인스적 해석은 통화를 늘리고 금리를 낮추어도 투자나 소비 등의 실물부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어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는데 강도가 약해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양 목적으로 지출한 정부재정 100조 엔은 1990년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3%이며 2000년 GDP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효과는 없고 국채만 누적시켜 재정 운영의 어려움만 가중시켰다.

막대한 재정 투입이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재정 투입은 속성상 정부 선호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 소비자 선호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예를 들면 1998년 4월에 투입한 16조7000억 엔의 절반과 11월에 투입된 1960억 엔 중 664억 엔이 소비자 선호와는 무관한 공공사업에 지출됐다. 또 1991∼2000년의 정부발주 건설 수주액 59조 엔은 같은 기간 총건설 수주액의 30%에 해당한다. 이는 소비자 선호에 따르지 않은 정부 부양책이 이미 퇴출됐어야 할 좀비 건설업체를 연명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일본 경제는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장기 불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는 케인스적 진단도 틀렸다. 현재의 이자율이 매우 낮아 곧 오르리라는 예상으로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거품 붕괴와 함께 누적된 부실대출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둬 은행권 밖으로 돈이 흘러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7년 중반∼1998년 중반에 본원통화가 10% 증가했지만 광의의 통화량(M2+CD)은 3.5%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부실은행의 청산은커녕 국유화와 구제금융이 금융산업은 물론이고 이와 관련된 실물부문의 구조조정을 방해했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정책은 정통 케인스 경제학에 입각한 것이다. 결과는 참혹하다. 이제 남은 해법은 하나다. 불황의 의미를 깨닫고 거품이 형성되는 동안 이뤄진 잘못된 경제구조가 바로 고쳐지도록 시장 청산에 맡기는 일이다. 대중에게 인기가 없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겠지만 이 해법만이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