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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자, 진실을 읽자

입력 | 2010-04-04 20:00:00


인터넷만 보는 사람과 종이신문만 읽는 사람에겐 세상이 각각 달리 비칠까.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파트너인 인터넷매체 슬레이트가 작년 여름 실험을 했다. 사흘 동안 슬레이트 기자 두 사람은 드러지리포트 같은 인터넷신문만 보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와 전직 기자는 종이신문만 보게 한 뒤 토론을 시킨 것이다.

인터넷과 신문 讀者비교해보니

두 그룹에 비친 세상은 확연히 달랐다. 인터넷신문만 본 사람은 미 정부가 경기부양책 예산 중 1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으로 달랑 냉동 햄 2파운드를 구매했다며 충격적이라고 한 반면 종이신문만 본 사람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농무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종이신문 독자는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이라크 상황을 안 볼 수 없었지만 인터넷독자는 잘 모른다고 했다.

7일 신문의 날을 앞뒀다고 해서 “그러니 우리는 인터넷매체 대신 종이신문만 봐야 한다”고 외칠 생각은 없다. 다만, 갈수록 인터넷 정보가 넘친다 해도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사실은 강조하고 싶다. 사람이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한쪽에만 쏟아 부으면 다른 면의 진실과 사실은 까마득히 모를 수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가려가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게 개인과 세상에 이로운 것도 이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엔 온갖 설(說)이 난무한다. 방송과 신문이 쏟아내는 추론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엔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취재원의 주장이 뒷받침된다. 하지만 인터넷 필자들은 하나같이 전문가이고 당사자인지 근거가 따로 없다. 정부가 발생 시점부터 우왕좌왕하는 것과 달리 이들 인터넷 기사는 나름대로 논리 정연해 사건의 전말이 손에 잡히는 기분이다.

큰 사건 뒤에 꼭 따라붙는 음모설은 그래서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든다. ‘음모설 문화’의 저자인 마이클 바쿤 시러큐스대 교수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앞뒤가 안 맞을 수 있는 반면 음모설은 아귀가 딱 맞아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영화 ‘라쇼몽’에서 사건 관련자들의 목격담이 각기 다르듯, 직접 보거나 겪은 일이라도 인간이 진실을 다 알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일부러 속고 속인다기보다 우리 뇌가 그렇게 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단 믿게 되면 그걸 뒤집는 정보가 나와도 뇌는 입력을 거부한다. 그래야 자신이 평화롭다. 2001년 9·11테러가 터진 지 3년 뒤 250만 쪽의 자료와 1200명 면담을 토대로 한 공식 조사보고서가 나왔는데도 2008년 17개국 1만6063명에게 여론조사를 한 결과 9·11테러가 알카에다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은 46%에 불과했다. 15%는 미국 정부가, 7%는 이스라엘이 배후라고 믿고 있었다.

생각·판단의 힘은 ‘읽기’에서

앞으로 정부가 어떤 ‘진실’을 발표하든 모든 이의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주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길을 찾는다면, 중요하고도 믿을 만한 정보를 가려 읽으면서 어떤 위기든 새로운 기회로 승화시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앞서 실험에 참가한 인터넷 독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를 정제해 제시해주는 뉴욕타임스의 기능이 제일 아쉬웠다”고 했다. 좋은 신문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야 나의 일이건 세상일이건 제대로 판단할 수 있고 책임 있는 시민 역할도 가능해진다.

인터넷 독자들은 대개 관심 있는 것만 골라서 본다. 게다가 눈으로 훑는 인터넷과 오감을 통해 읽는 종이신문은 사고와 행동에도 달리 작용한다. 훈련된 기자 대신 자칭 전문가들이 주름잡는 인터넷 공간에선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믿음이, 이성보다 감정이, 중도보다 극단이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정치의 양극화와 사회의 파편화가 가속화되는 데 인터넷이 한몫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이 올해를 ‘국민독서의 해’로 정하고 활자 읽기를 일본 부흥의 단초로 삼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이지유신을 낳은 에도시대의 독서력을 재현하겠다”며 민관협력단체인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는 초등학교부터 독서시간을 두고, 신문 구독에 정부 예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인터넷을 외면할 순 없지만 인터넷에 매몰돼선 생각하는 힘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산업화를 이끌었던 암기 위주 획일적 교육을 정보화시대에 맞는 창의력 키우기 교육으로 개혁하려면 ‘읽는 문화’가 필수라는 역설적 통찰이다.

“…자, 읽자”는 이 단체가 내건 표어다. 앞부분엔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 우리 걸그룹의 유행가처럼 남자가 변심했다고 여자들끼리 마티니나 마실 게 아니라 “애인한테 차였다. 자, 읽자”며 독서의 기회로, 발전의 발판으로 삼는 식이다. 어떤 일이 닥친대도 더 큰 일을 위해 스스로 다지는 사람은 솟아날 수 있다. 자, 읽자.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