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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천안함 사태, 國格을 시험한다

입력 | 2010-04-03 03:00:00


천안함 침몰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대사건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달 26일 밤 침몰 1보(報)를 전해 듣고 ‘전쟁 가능성’을 떠올린 것은 결코 경솔한 반응이 아니다.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발생한 1200t급 초계함 침몰 소식을 듣고 많은 국민도 비슷한 걱정을 했을 것이다. 북한은 1999년과 2002년 1, 2차 연평해전 도발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도 서해 대청도 근해에서 남한 해군 함정을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에 대한 공격 용의자로 북한을 제외하고 누구를 먼저 떠올리겠는가.

신속한 위기관리 매뉴얼 시급

1차 충격이라고 할 수 있는 천안함 침몰과 46명의 실종자 발생에 이어 앞으로 2차, 3차 충격이 필연적으로 닥친다. 실종된 지 일주일이 지난 사병들의 생사 확인, 침몰 원인에 따른 파장이 그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후속 충격이 더욱 강력할 수도 있다. 치밀한 대비책을 세워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 1차 충격으로 인한 피해는 천안함으로 그쳤지만 2, 3차 충격에 잘못 대응하면 국가가 흔들릴 수도 있다. 안보는 몇몇 당국자나 해군 같은 특정조직에 맡길 일이 아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설령 북한과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접적지역에서 발생한 초계함 침몰은 안보와 직결된다.

정부와 군의 초기대응에는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후속 대응이라도 빈틈없이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1999년 이후 남북한의 무력충돌은 모두 해군 사이에서 벌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육군과 공군은 직접 충돌을 하지 않았다. 어느 군보다 가장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어야 할 해군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평소에 문제점을 파악하고 치밀한 위기대책을 준비했더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령도 근처 바닷속이 눈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탁하고 조류가 세다는 것은 이번에 새로 파악된 정보가 아니다. 수심도 마찬가지다. 해군에게 현지 바다사정은 기초 상식이다. 그런데도 바다 상황에 맞는 ‘맞춤형 인명구조대책’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원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천안함이 침몰한 순간부터 민과 군의 가용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는 체제를 구축했다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실종자 수색을 위한 선박과 전문가들을 허겁지겁 하나둘씩 불러들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상시 가용 자원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매뉴얼은 없었다. 첨단장비를 활용한 구조작업이 조기에 시작됐다면 한주호 준위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동료를 구하려다 희생되는 불행한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北은 南정보 주워담고 있다

보안의식도 문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우리 군함의 구조를 상세히 설명하며 자랑하듯 취약지점을 공개했다. 침몰지역에 출동한 군함의 수와 제원, 그리고 동원된 전문인력도 빠짐없이 전해진다. 북한은 지금 앉아서 힘들이지 않고 각종 남한 해군 정보를 챙기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경쟁하듯 근거 없는 설(說)들을 마구 쏟아낸다. 북한의 공격설도 있지만 우리에겐 상처가 되면서 북한엔 도움이 되는 이적(利敵) 주장도 독버섯처럼 등장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 원자력발전소 수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을 계기로 붕 떠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쓰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생사가 걸린 안보태세에 허점투성이였다. 천안함 침몰은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경고나 마찬가지다.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도 국격(國格)을 시험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