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수도권]이순신장군 동상 1.5m 높아진 까닭은?

입력 | 2010-03-30 03:00:00

■ 제작 참여자가 밝힌 뒷얘기

세종로 확장 맞춰 규모 확대… 재료 모자라 탄피-고철 사용




 1968년 4월 인부들이 주물공장(당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소재)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조립하는 모습. 동상 몸체를 총 6조각으로 나눠 주조한 뒤 전기용접으로 이어 붙였다. 사진 제공 서울시

“거기 서울시청이죠. 제가 1968년 이순신 동상 제작에 참여한 사람입니다만….” 지난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기술자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서울시로 총 22건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직접 동상 건립에 관여한 시민들의 제보 전화였다. 서울시는 “이 중 실제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7명을 초청해 동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적합한 보수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며 “이 과정에서 동상 제작 과정에 얽힌 40년 전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6.5m 크기인 동상은 본래 5m로 계획돼 있었다. 조각을 하던 중 갑작스레 세종로 폭이 100m로 늘어났고 이에 맞춰 동상 규모도 확대하라는 정부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점토 조각 작업에 참여했던 백현옥 씨(70)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설 작업장에서 조각 중이었는데 갑자기 크기가 커지는 바람에 투구 등은 천장 플라스틱을 뚫고 만들었다”고 전했다. 경제 사정이 열악했던 때여서 동상 주재료인 구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방부에서 공수해온 탄피를 이용했지만 구리 성분이 부족해 주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탄피 대신 해체된 선박에서 나온 엔진을 비롯해 놋그릇과 놋숟가락 등 일반 고철을 이용했다. 이마저도 양이 모자라 재료가 조달되는 대로 작업을 하다 보니 동상 재질과 두께가 고르지 못했다. 얼룩덜룩한 색상을 가리려 짙은 청록색 페인트가 동원되기도 했다. 주조기술자로 참여한 김주남 씨(65)는 “6조각으로 나눠 조각한 동상 몸체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내부 용접을 군데군데밖에 하지 못했다”며 “기술이 열악해 지금쯤 많은 균열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8t 동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세종로 사거리가 마비되기도 했다. 동상 안치 작업은 1968년 4월 24일 오후 세종로의 모든 전차를 멈춘 뒤 일본에서 들여온 최신 크레인으로 진행했다. 당시 크레인을 운전한 이기종 씨(72)는 “고위 관계자 분들이 ‘동상을 떨어뜨리는 날에는 큰일 난다’고 겁을 줘서 긴장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시는 참여자들로부터 기증받은 관련 기록물과 사진, 영상물 등을 바탕으로 동상을 원형에 가깝게 보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