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국 ‘노후 불안감’ 亞 최고

입력 | 2010-03-25 03:00:00

가계저축률 세계최저 수준… ‘은퇴후 자금’ 턱없이 부족
HSBC 7개국 3563명 조사




한국인은 선진국은 물론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의 사람들보다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노후 대비를 충분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저축할 여력이 없고 은퇴자들은 부동산 자산에 대한 과도한 집중으로 금융자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만으로 은퇴 후 생활은 불가능하다.

HSBC그룹은 최근 아시아 7개국의 35∼65세 성인 남녀 3563명(한국 5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현재 재무계획에서 은퇴자금 부족을 가장 두려운 위협’으로 꼽은 비율은 61%로 싱가포르(42%)는 물론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말레이시아(38%), 인도(26%), 중국(26%)에 비해서도 크게 높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는 홍콩과 대만인들은 은퇴자금 부족으로 인한 두려움이 각각 20%와 18%로 크게 낮았다.

또 한국인 응답자 중 79%는 현재 저축 수준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인은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2008년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2.5%로 미국의 2.7%보다 이미 낮은 상태. 2009년 미국은 소비부진이 지속되면서 가계저축률이 4.3%로 뛰어올랐다. 반면 한국은 아직 국민소득통계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처음 나타난 근로자 임금 감소 및 지난해 봄부터 두드러진 소비회복으로 미루어 볼 때 저축률은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15∼20% 수준으로 아시아 주변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추락해 왔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하는 가계부채가 저축률 하락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시중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늘고 이와 함께 주택가격도 급등하면서 은퇴 후 자산의 부동산으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해졌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은퇴자의 1인당 평균 순자산은 1억242만9000원으로 이 중 91%인 9365만 원이 부동산 순자산이다. 금융순자산은 1인당 770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주택을 담보로 노후생활자금을 지원받는 역모기지(주택연금)는 크게 미흡한 상황이다. 주택금융공사가 2007년 7월부터 주택연금을 실시하고 있지만 3월 23일 현재 총누적 가입자는 2600명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1990년 역모기지 제도를 시행해 2009년 말까지 62만 명이 가입했다. 강성철 주택금융공사 주택연금부장은 “많은 은퇴자들이 평생 일해서 자식 교육하고 나면 남는 자산이 집 한 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한국인은 집만은 남겨놓고 상속해야 한다는 의식이 유난히 강해 역모기지를 활용하길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1989년부터 국민연금이 도입됐지만 연금 수령액은 노후를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20년 이상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75만5195원에 불과하다.

김현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은퇴에 대한 불안은 부동산, 고령화, 교육 등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이 총합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고령층 노동시장을 늘려 소득을 늘려주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며 자산의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다양화하는 노력을 개인과 국가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