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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혼탁한 세상… 아이들 웃음에서 구원을 얻다

입력 | 2010-03-13 03:00:00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야. 사람을 사랑하여라. 자연도 아껴 주고.”

2008년 8월 29일. 시인 김용택 씨(62)는 38년간 머무른 교단을 떠나면서 열두 명의 2학년 꼬마 제자에게 이 두 가지만을 당부했다. ‘공부 잘하고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 같은 말은 아예 생각도 나지 않았다.

봄날 꽃길에 엎드려 쓴 시에 대해 그는 ‘꽃들이 일러준 말을 받아 적은 글일 뿐’이라 했다. 그런 그에게 아이들은 고단한 인생길을 환하게 밝혀줬던 스승이다. 김 시인은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보다는 늘 함께 뒤엉켜 뛰놀며 웃고 울려 했다. “아빠도 할머니도 학예회에 오지 않는다”며 수돗가에 우두커니 홀로 서서 우는 성민이를 보고 그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린 제자의 들썩이는 어깨를 꼭 감싸안고 등을 쓸어주며 함께 울었다.

저자는 ‘거짓이 판을 치는 사회에 은근슬쩍 섞여들지 못하고 고립의 두려움을 모르는 채 홀로 살아 왔다’고 썼다. 정치, 교육, 사회 등 일상에서 들려오는 세상 소식에 대한 상념을 두런두런 엮어나간 수필과 시구 사이사이에 때로 바짝 세운 칼날처럼 시퍼런 서슬이 느껴진다. 하지만 답 없이 반복되는 고민에 지쳐 아이들 이야기를 다시 꺼낼 때면 문장 위에 커다란 웃음이 피어난다. 아이들 덕분에 지금도 자신의 삶을 구원하고 있으니, 아이들을 스승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드문드문 삽입한 아이들의 글이 때로 작가의 글보다 포근한 온기로 독자의 마음을 끌어안는다. 각자 ‘잔소리’에 대한 생각을 말해보라고 했던 시간. ‘쓸데없는 소리’ ‘우리 잘 크라고 하시는 말’ ‘잘못해서 혼나는 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시키는 말’…. 온갖 유쾌한 답안 중에 개구쟁이 민수의 대답이 유독 눈에 띈다.

“헷갈리는 말이오!”

처음부터 죽 읽어나가기보다는 여기저기 책장을 들추다 눈에 걸리는 문장 주변에서 쉬어가며 읽기에 좋다. 색상과 개수를 절제한 삽화도 편안한 느낌을 더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