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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여성 리더십 무기는 솔직함…단, 실력 뒷받침돼야”

입력 | 2010-02-27 03:00:00

‘0.1% 인재’ 박경미 휴잇 한국지사 대표 인터뷰

위기 있으면 있는 대로 전달, 고객-직원들과 신뢰 높이 쌓아
항상 기대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엑스트라 마일스’ 정신으로 업무




국내 굴지의 생명보험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프레젠테이션(PT) 자리. 대형 글로벌 컨설팅사의 임원 5명이 나란히 PT를 했다. 4명은 남성, 1명은 여성이었다. 이들은 그야말로 피 튀기게 경쟁했다. PT가 끝난 뒤 고객사 임원이 여성에게 물었다.

“이런 프로젝트 해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앞서 발표한 남성 4명은 한결같이 ‘다 해봤다’는 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침착한 목소리로 “솔직히 이런 프로젝트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물론 비슷한 유형의 다른 프로젝트를 해본 적은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회사 내 역량을 모두 동원해서 잘해내고 싶습니다”라고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솔직함은 강력한 무기가 됐고 결국 여성이 해당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 여성은 휴잇어소시엇츠(이하 휴잇) 한국지사의 박경미 대표(47)다.

박경미 휴잇어소시엇츠 한국지사 대표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리더십의 원천은 솔직함이다. 단 실력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훈석 기자

정글과 다름없는 컨설팅업계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드물다. 하지만 그는 인사관리(HR) 컨설팅 업무를 시작한 지 단 4년 만에 대표 자리에 올랐다. 특히 2008년에는 휴잇 각국 2만3000여 명의 임직원 중 30여 명에 불과한 ‘글로벌 프린서플’(글로벌 파트너에 해당)이 됐다. 휴잇 상위 0.1%대의 인재가 된 셈이다. 박 대표는 “여성 리더들은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 많다”며 “여성 리더십의 원천은 솔직함이다. 단 실력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 휴잇 한국지사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전문은 DBR 52호(3월 1일자)에 실려 있다.

―초단기간에 대표로 승진한 걸 보면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항상 기대보다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엑스트라 마일스(Extra Miles·추가 거리)’를 염두에 뒀습니다. 맡은 것만 하지 않고 맡지 않은 것도 했습니다. 걸출한 인재가 많은 컨설팅업계에서 맡은 일만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 넘쳐나니까요. 실제로 대표가 되니 일을 더 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더군요. 열정을 가진 사람이 당연히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많은 직장인들은 업무에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한 직장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휴잇이 세 번째 직장입니다. 휴잇에서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다들 욕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게다가 실력 있는 공부벌레들이었지요. ‘후진국의 부자는 자신의 정원이 동네 공원보다 좋다. 선진국에 있는 부자는 자신의 정원보다 동네 공원이 훨씬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원이 개인의 실력이라면 동네 공원은 기업의 근무 환경을 뜻합니다. 후진국 회사에서는 동료들에게 배울 점을 찾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생활하기 힘들겠지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진 훌륭한 동료들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전공도 영문학인 데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 업무도 인사관리가 아니었습니다. 인사 컨설팅을 하며 좌절한 적은 없었습니까.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 혼자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었지요. 이럴 때마다 대학 은사님이 말씀하셨던 ‘파이아르제곱(πr²·r은 원의 반지름)론’을 되새겼습니다. 원의 면적은 πr²이지요. 이게 자신이 아는 것을 뜻합니다. 원의 둘레인 2πr는 자신이 모르는 것입니다. 원의 면적이 커질수록 원의 둘레도 길어집니다. 모르는 게 많을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게 많아졌다는 뜻이지요. 실력 있는 동료들로부터 더 많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했습니다. 고객도 컨설턴트 못지않게 유능했고요. ‘까다로운 고객이 좋은 컨설턴트를 키워낸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성 임원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외유내강입니다. 과거 성공한 여성들은 남성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요새 여성 임원들은 겉으로는 평범하고 부드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여느 남성 못지않게 전문적이고 정신력도 강인합니다.”

―외유내강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솔직함입니다(그는 생명보험사에서 솔직한 태도로 프로젝트를 따낸 일화를 소개했다).”

―사내에서도 솔직함으로 일관하셨나요.

“물론입니다. 위기가 있으면, 직원들에게 그대로 얘기해줍니다. 경영실적은 물론 개인적인 사항까지도 공유합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해서 쉽지 않지만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또 직원을 부하가 아닌 동료로 여깁니다. 예를 들어 리더십 다면 평가를 실시한 뒤 각자 개선해야 할 행동 목록을 직원들과 교환했습니다. 저는 평가에서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지적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목록을 몇몇 직원에게 전달하고, 매달 한 차례씩 아침 식사를 하면서 점검을 받고 있습니다.”

―여성 리더가 더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컨설팅업계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는 여성의 특성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사를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또 여성은 컨설팅 결과를 고객사에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컨설턴트가 주도적으로 정답을 주려다 보면 역효과가 납니다. 고객 스스로 컨설팅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박경미 대표는
1986년 이화여대 영문학과 졸업
2000년 휴잇어소시엇츠 한국지사 입사
2004년 휴잇어소시엇츠 한국지사 대표
2008년 휴잇어소시엇츠 글로벌 프린서플(Global Principal)
2008년 주한외국기업경영자협회장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2호(2010년 3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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