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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서하진]SAT강사만 나라망신 시켰나

입력 | 2010-01-21 03:00:00


몇 해 전 겨울,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아들아이가 일본엘 가야겠다고 했다. 이유가 참으로 황당했다. 한국에서 토플을 보려면 무려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나…. 도쿄의 지인에게 신세를 지며 시험을 치르고 온 아이는 한 달 후에는 다시 대만엘 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토플 핑계로 여행하려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거금을 들여 두 차례 시험을 봤어도 원하는 학교에 갈 만한 점수를 만들지 못한 아이와 나는 급기야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사정해보고 안 된다면 시티칼리지부터 시작하지라는 심산이었다.

힘겹게 뚫어야했던 아들 유학의 길

가서 보니 요지경 속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뉴욕의 유학원이라는 곳에서는 저마다 전문가임을 자청하는 사람이 아이의 입학을 장담하며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 전문가라는 사람은 귀가 번쩍 뜨이는 대학 출신이었고 그들이 장담하는 학교 역시 그러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아둔하고 대책 없는 엄마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이왕 온 거, 부딪혀 보자 싶어 아이와 나는 자동차를 빌려 동부 4개 주의 학교 10여 군데를 그야말로 쑤시고 다녔다. 미리 약속을 하고 간 곳이나 불쑥 찾은 곳이나 사람들은 친절하고 예의 발랐지만 지레 주눅이 들어 있었던 우리로서는 매일매일의 상담이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어지간한 대학, 그저 받아주겠다는 곳에서 시작하자 싶어졌지만 그때부터 아이가 오기를 부렸다. 아이는 아예 나를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입학 상담실을 찾아 상담원을 만나고 제가 알아낸 사항을 내게 브리핑하고는 다음 장소까지의 운전조차 도맡는 거였다. 결국 아이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대학의 입학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조건부 입학이었으나 아이와 나의 성취감은 대단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아이를 먼 나라에 두고 돌아올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던 터였다. 덩치만 클 뿐 어려움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 아이가 우리말로 하는 강의도 제대로 듣지 않던 아이가 낯선 언어, 물선 땅에서 견뎌내려나. 차마 미덥지 않던 참이었다. 그러니 외용도 웅장한, 절로 기가 죽는 건물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고, 되지 않는 영어로 제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오는 아이가 내게 준 위안은 입학 허가를 얻었다는 사실 이상으로 소중했다. 출국할 때, 긴 비행 시간 동안 한잠도 자지 못했던 나는 홀로 돌아오는 길에는 느긋하게, 깊은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한 강사가 SAT시험지를 유출한 일로 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가 시끄럽다. 따지고 보면 아들아이가 일본까지 가야 했던 것, 토플 시험보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것도 다 이런 사람 때문이었구나 싶다. 시험방식이 CBT, iBT로 차례로 바뀌며 복잡해진 것이나 우리만 유독 시험 횟수가 줄어든 것이 모두 그런 종류의 부정행위 탓이었다니 말이다.

엄마들도, 교육당국도 반성할 때

그 강사는 물론 사기꾼이요, 나라 망신시킨 범죄자이지만 우리는 아무런 가책 없이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수백만, 수천만 원을 요구하는 학원에 앞 다퉈 보내는 엄마 역시 지탄의 대상이지만 그 엄마들만의 잘못일까. 우리 교육의, 우리 사회의, 우리 엄마의 의식을 문제 삼는 일은 어렵지 않다. 비난은 쉽지만, 그러나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는 원점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부딪히고 깨지고 울고 고통을 겪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편하게, 어떻게든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상한 풍조에 물들어 있지 않은가.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하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