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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남윤서]경험 대우하려는 수석교사제, 걱정 앞서는 현장

입력 | 2010-01-21 03:00:00


학교의 승진 체계는 단순하다. 교사 다음은 교감, 그 다음은 교장이다. 시험을 통해 장학사나 장학관이 되는 길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교육직에서 행정직으로 바뀌기 때문에 ‘전직’으로 인식된다. 어느 쪽이든 경력이 쌓인 교사는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관리직이나 행정직으로 진출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고 싶어 하지만 끝까지 교실 현장에 남으려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이 많은 교사가 평교사로 머물면 무능력한 교사라는 평을 듣는 것이 현실이다.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교사들이 관리직이나 행정직이 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8일 수석교사제를 확대 시범운영하겠다며 전국에서 수석교사 333명을 선발했다. 교육경력 15년 이상인 수석교사는 시도교육청이 수업 전문성을 인정한 교사들이다. 이들은 수업 시간을 줄이는 대신 교내외에서 다른 교사들의 수업을 지도하고 수업 방법을 보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감에 상응하는 지위로 우대한다.

수석교사제는 다시 말하면 관리직이 아닌 현장 교사 가운데 교감급의 직위를 신설한 것이다. 이 제도에는 현장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우대받는 풍토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지나치게 좁은 교감, 교장 승진의 문을 다른 방향으로 넓힐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이 승진 목표를 잃고 매너리즘에 빠질 걱정을 덜 수 있고 수업 전문성 향상을 위한 경쟁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교과부의 기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특히 초등보다 중등에서 더 그렇다. 중고등학교는 철저히 교과 과목별로 운영된다. 대학 때부터 학교 현장까지 교과목의 벽은 교사 간에도 넘을 수 없다. 아무리 전문성이 뛰어난 수학 교사라도 영어 교사의 수업을 참관하고 지적하거나 조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제도가 제도로 실효를 거두려면 인근 학교 몇 곳이 어울려 과목별로 공동 수석교사를 보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럴 경우 수석교사가 지나치게 양산되는 부작용을 피하기 힘들다. 또 중등에만 수석교사가 많을 경우 초등 교사와의 형평성 논란을 빚을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수석교사제는 나이 많은 교사들에게 자리보전 해주려 하는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경력 많은 교사의 경험과 지혜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뜻에 이론은 없다. 다만 수석교사의 자격과 선발 인원, 업무에 대한 교육 당국의 합리적 기준이 먼저 정해져야 도입 취지가 제 빛을 발휘하지 않을까.

남윤서 교육복지부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