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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초중고 수업 올해부터 토론·탐구 위주로 바뀔 가능성

입력 | 2010-01-19 03:00:00

“고구려 신라 백제 당나라 대표 모두 자리하셨습니다
지금부터 3국 통일을 위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특명! 말하기·쓰기 실력을 키워라. 올해부터 초중고 수업시간에 말하기·쓰기 활동이 대폭 강화된다. 교과내용의 핵심을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고 쓰는 능력을 키워야 치열한 내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종암중학교의 토론수업.

《# 올해 초 국가 영재교육원 입학전형에 처음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로 전북대 과학영재교육원 대상자로 선정된 임다빈 군(13·전주 용흥초 6학년). 1차 서류전형 통과엔 담임교사의 추천서, 학교생활기록부, 각종 과학대회 수상 실적으로 꾸민 포트폴리오가 주효했다. 2단계 심층면접에선 자기가 알고 있는 과학 원리와 개념을 조리 있게 말로 표현하는 게 관건이었다. 임 군은 “선생님께서 추천서에 ‘과학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논리적이며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한다. 사고력이 풍부해 실험 방법과 결과를 잘 추출한다’고 적어주셨다”면서 “평소 수업시간 실험, 토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게 합격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임 군은 평소 과학서적을 읽으면 A4용지 한 쪽 분량으로 책 줄거리, 과학원리 또는 용어의 뜻,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정리한다. 말하기, 쓰기를 생활화한 임 군의 학생부엔 ‘사회-집단생활에 참여하는 태도가 바람직함’ ‘국어-말하기 쓰기 능력이 양호함’ ‘도덕-발표 능력 우수’로 기록돼 있다.

# 2010학년도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사정관전형에 합격한 현지훈 군(14·부산 분포중 2학년). 1차 서류전형, 2차 심층면접을 통과한 현 군은 평소 서술형 문제 위주로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현 군은 서술형 문제를 풀 때 바로 답안을 작성하지 않고 먼저 정답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핵심단어를 떠올린다. 그런 다음 핵심어의 뜻을 정리하고 관련된 예를 제시한 다음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를 적는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레 논리정연한 답이 완성된다는 게 현 군의 설명. 현 군은 “평소 내용을 글로 써서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설명해 주는 걸 좋아한 덕분에 실력이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상 시나리오… 토론… 공연…
말하기-쓰기 비중 껑충
학생부 기재-내신 반영될 듯

입학사정관제 등과 맞물려
고교-대학입시 후폭풍 예고

임 군과 현 군의 공부법엔 ‘말하기·쓰기’란 공통점이 있다. 그동안 말하기·쓰기 중심의 학습은 최상위권 학생들만의 공부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다가올 신학기부턴 초중고 전 학년이 말하기·쓰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부턴 초중고 교육과 평가가 말하기·쓰기 활동 중심으로 확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초중고교 일반교과수업에서 창의·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음에 따라 말하기·쓰기 중심의 토론, 탐구, 실험 활동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말하기·쓰기 평가가 학교 내신 성적에 반영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교과부의 이런 방침은 최근 특목고와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속속 도입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와 맞물려 강력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말하기·쓰기가 성적에 직접 반영되지 않더라도, 말하기·쓰기 활동에 학생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얼마나 우수한 성과를 냈는가가 학생부에 상세히 기록돼 상급학교 진학 시 입학사정관전형의 참고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암기위주 학습을 했거나 정답을 찾는 ‘기술’만 익혔던 학생들은 이 같은 변화에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 말하기·쓰기 활동을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실시해 내신 성적에 반영할 계획인 학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학교수업에는 말하기·쓰기 활동이 어떤 모습으로 도입될까? 그 평가기준은 도대체 뭘까?

서울 종암중 2학년 국사시간을 살펴보자. 학생들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황산벌’의 도입부분을 감상한 뒤 교과서를 참고해 고구려, 신라, 백제, 중국의 당나라 대표를 주인공으로 한 ‘4자회담’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이 시나리오를 연극 대본 삼아 조별로 공연을 펼친다. 이후 신라의 통일정책에 대한 찬반토론이 이어진다.

시나리오 작성과 토론은 한 학기에 한 번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수행평가의 일환이다. 담당교사는 시나리오 내용의 창의성, 역사적 사실을 담은 정확성, 사실과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표현력을 평가하고 일부 우수학생은 학생부에 활동내역으로 기록한다. 토론은 학생별로 점수가 매겨진다.

국사의 수행평가 형식은 학년별, 단원별로 천차만별이다. 역사 속 인물이 되어 당시 시대상황과 현안에 맞게 자기주장을 발표하는 ‘인물체험’, 학생들이 직접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보는 ‘모의국회’, 연극 대본을 직접 작성해 교실에서 연기를 펼치는 역사연극 등 폭넓은 학습활동이 진행된다.

올해부터 초중고교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과목 수업시간엔 이런 형식의 학습활동이나 수행평가가 확대 실시된다. 개별평가 중심이므로 5, 6명이 한 조를 이뤄 특정 주제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거나 조장이 대표로 발표하는 활동은 지양된다. 더는 무리에 ‘묻혀서’ 가기 어렵단 얘기다.

교과별로 최소 5점부터 최대 20점까지 내신성적에 반영했던 수행평가 점수도 최대 30점까지 비중이 늘어난다. 이에 따라 교과내용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고 쓰지 못하면 일정수준 이상 학교 내신성적을 올릴 수 없다. 평소 교과 관련 책을 꾸준히 읽으며 수행평가 때 활용할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창의성’은 수행평가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득점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과 수업시간에 진행되는 말하기·쓰기 활동이 모두 점수에 반영되는 건 아니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아이디어를 나누는 수학토론이나 ‘∼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쓰시오’처럼 주관적 견해 위주의 글쓰기가 많은 국어과목의 경우 학생들의 결과물을 기계적으로 평가해 점수화하기 어렵다.

이런 교과목은 중간·기말고사의 서술형 문제로 학생들의 창의력과 논리력, 말하기·쓰기 실력을 평가한다. ‘수십 자 이내’였던 답안지 분량이 ‘수백 자 이내’로 길어지거나 제시문과 논제가 주어지는 대입논술처럼 문제 자체의 난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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