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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여성노동운동

입력 | 2009-12-26 03:00:00

경공업 중심 女工늘어
1920, 30년대 쟁의 주도
8시간 지붕농성도 벌여



1931년 5월 29일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임금인하 반대 농성을 벌이는 평원고무 여성 노동자 강주룡.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황해도 옹진군 암기농장의) 여공의 생활은 실로 참담하답니다. …임금은 불과 이십전 내지 사십전임니다. … 아츰에 출근이 좀 느지면 오전씩 벌금을 밧고 y심 시간에 좀 느지면 십전, 코를 한번 잘못 풀어도 오전 내지 십전, 너무 곤하야 잠간 조는데는 으레히 십오전씩 … 어떠한 때에는 임금보다 벌금이 만케되여 … 더 심하면 구타까지도 능사로 하여 온다 함니다.”

―동아일보 1927년 10월 21일자》
1920년대 들어서 노동자가 증가하고 사회주의 사조가 유입되면서 노동쟁의가 빈번해졌다. 1920년 81건이었던 파업은 1928년 119건, 1931년 205건으로 급증했다.

1920, 30년대 노동쟁의는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초반 산업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당시 공업은 신발 양말 방직 등 경공업 중심이었고 이 분야에 값싼 여성 노동력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었다.

1923년 서울의 양말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잇달아 파업을 일으켰다. 종로에 있던 태응양말, 경성물산상회 등의 노동자들은 임금 인하 등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고무공장과 고무신공장으로 이어졌다.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은 환기시설도 제대로 없이 냄새나는 공장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공장주는 불량품이 생기면 노동자에게 책임을 물어 벌금을 물렸고 노동자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1930년대엔 고무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고무신 값이 떨어지고 이는 임금 인하로 이어졌다. 1930년 평균 81전이던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임금은 1938년 63전으로 내려갔다.

1930년 8월, 평양의 국제고무 평안고무 대동고무 등 고무공장 노동자 1080명은 △임금 인하 반대 △작업으로 인한 상해 보상 및 치료비 지급 △수유시간의 자유 등을 요구하며 동맹파업을 벌였다.

1931년 5월 평양의 고무공장들은 전년에 이어 또다시 임금 인하를 시도했다. ‘평원고무’가 가장 먼저 임금을 10% 삭감했다. 그러자 여성 노동자 47명이 5월 17일부터 파업과 농성에 들어갔다. 5월 29일 평원고무의 한 여성 노동자가 평양 을밀대 지붕으로 올라가 8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한국 최초의 고공 농성이었다. 동아일보는 5월 30일 “을밀대로 올라간 녀직공은 강주룡(30)이라는 바 … 누구든지 쪼차 올라오면 떨어져 죽는다고 하며 무산자의 단결과 고주(고용주)의 무리를 타매하는 연설을 하얏다”고 전했다.

1920, 30년대엔 양말, 고무공장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차 승무원, 부두 광산 제련소 노동자들의 쟁의도 발생했다. 1934년 3월 23일 동아일보 사설 ‘격증하는 노동쟁의’는 “법률 제정과 같은 근본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지난하게 이어져온 한국 노동운동사. 노동자 권익 증대에 기여했지만 때론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흐르거나 사회 갈등을 증폭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다행히 최근에는 노사 상생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15년 만의 무분규 협상 타결’은 이 같은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