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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 色만 봐도 브랜드 이미지 ‘확’

입력 | 2009-12-05 03:00:00

첫사랑처럼 기억에 생생하게



일본 가전업체 켄우드(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와 영국의 스카치위스키 글렌피딕(두 번째)은 형태와 브랜드를 연결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 블랙앤드데커의 자동 사포기(세 번째)와 야마하의 전자 첼로(네 번째)는 모양을 보면 바로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게 디자인했다. 사진 제공 지상현 교수


많은 기업들이 색채와 브랜드를 연합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예컨대 코카콜라나 식품업체 하인즈는 빨간색, 펩시와 보석업체 티파니는 파란색, 맥도널드, 코닥, 렌터카 업체 허츠 등은 노란색과 강하게 연합되어 있어 그 색만 보고도 해당 브랜드를 떠올리는 소비자들이 많다.

그러나 색채와 브랜드를 연합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쓸 수 있는 색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색의 종류야 무한대로 많지만 소비자들이 쉽게 변별하고 기억할 수 있는 색채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올리브, 오렌지, 핑크와 같은 색명의 도움이 없다면 쉽게 변별하고 기억할 수 있는 색의 수는 10여 개에 불과할 것이다. 더구나 색채의 덕을 보고자 하는 기업들은 대개 빨강 혹은 파랑을 좋아한다. 두 색의 선호도가 가장 높고 디자인으로 소화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색보다는 형태와의 연합을 강조하는 기업이 많아야 하지만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형태와의 연합이 잘 이루어진 기업으로는 일본의 가전업체 켄우드, 맥도널드, 보드카 브랜드인 앱솔루트, 위스키 글렌피딕, 코카콜라, 애플컴퓨터, 폴크스바겐 등을 들 수 있다. 켄우드와 맥도널드는 기업의 심벌마크 형태를 간결하면서도 독특하게 만들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예컨대 켄우드는 심벌마크를 이용해 쇼핑백에서부터 제품 패키지에 이르기까지 핵심적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다. 소비자들은 빗살무늬의 일부만 보아도 켄우드를 연상할 정도다. 켄우드 마크와 같은 형태를 디자인에서는 옵티컬 패턴이라고 부른다. 옵티컬 패턴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거나 실제와 다른 색감을 느끼게 하는 등 재미있는 착시 효과로 시선을 끄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맥도널드의 노란 M자형 아치나 위스키 글렌피딕의 삼각형 병, 보드카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앱솔루트, 애플컴퓨터 등은 모두 독특한 형태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글렌피딕이나 앱솔루트의 경우 술을 마시지 않는 필자도 그 형태를 기억할 정도로 술병이 독특해 그것이 그대로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형태에는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아울러 형태는 색채보다 어의적 연상을 쉽게 하게 해준다는 장점도 있다. 색채의 연상어를 조사해 보면 빨강은 피, 불, 전쟁, 열정, 여자 등과 같이 제한된 것들만 떠오르고 의미도 추상적이다. 반면 형태는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지금까지 논한 브랜드들이 심벌마크나 용기의 형태에 주목한 경우라면 제품 자체에도 다양한 의미의 형태를 부여한 기업들이 있다.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블랙앤드데커의 자동 사포기와 야마하의 전자 첼로도 독특한 형태로 유명하다. 자동 사포기는 컴퓨터의 마우스를 연상하도록 디자인되었고 야마하의 첼로는 인체 골격을 보는 듯하다. 이런 형태들은 마우스, 달팽이, 인체 골격 등 다양한 형태를 연상시켜 소비자들의 기억 창고 속에 쉽게 저장된다. 형태가 곧 브랜드가 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기억은 유형별로 각기 독립적으로 저장되고 처리된다. 그 가운데 어의기억(semantic memory)과 시각기억(visual memory)이라는 것이 있다. 암기하기 어려운 단어들의 두음만을 연결해 의미 있는 단어를 만들면 기억하기 쉬운데, 이처럼 기억 대상을 의미 처리해서 기억하는 것을 어의기억이라 한다. 시각기억은 말 그대로 사람의 얼굴이나 사물의 모양 등 시각을 통해 본 내용의 기억이다. 이 밖에도 지금까지 학계에서 논의되는 기억의 유형만 4, 5가지 정도가 더 있다. 누군가가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잘 기억한다고 다른 기억 능력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마다 강점을 가진 기억 유형이 다르기도 하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의 기억 능력도 제각각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여러 유형의 기억을 함께 자극하면 그만큼 기억되기 쉬워진다.

형태는 이런 맥락에서 매우 요긴한 디자인 요소다. 그러나 형태를 브랜드와 제대로 연결하려면 먼저 일관된 표현 전략이 있어야 한다. 자칫 갈팡질팡하면 브랜드 이미지에 큰 혼란만 줄 수도 있다. 미국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자동차 브랜드들의 앞날이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psyj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