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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요지경 세상, 점쟁이는 알까

입력 | 2009-12-04 03:00:00

점술을 하위문화로 취급하면서도 그에 의존하는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경쾌하게 풍자한 창작뮤지컬 ‘점점’. 사진 제공 악어컴퍼니


연말 들어 공연담당 기자들에게 자주 들어오는 질문. “연말에 뮤지컬 한 편 보려는데 뭐가 좋을까요?” 이에 선뜻 답하려면 웬만한 공연을 다 봐야 할 뿐 아니라 물어보는 이의 취향까지 물론 배려해야 한다. 이런 전제를 묵살하고 의뢰인이 1년에 한두 편의 공연을 보는 사람이라면 ‘영웅’을 추천한다. 최신 창작 뮤지컬이라 아직 본 사람이 적다는 이유가 첫째다. 둘째, 음악적 완성도가 높고 세련된 무대연출과 안무가 곁들여져 ‘보는 재미’가 있다. 셋째, 민족영웅 안중근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의뢰인이 재미있는 작품을 찾는 사람이라면 ‘점점’(박인선 작, 변정주 연출)을 추천한다. 역시 최신 창작 뮤지컬이라 본 사람이 적다는 이유가 첫째다. 둘째로 젊은 세대의 다양한 문화코드가 범벅되어 있어 의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웃으면서 볼 수 있다. 셋째로 소극장 뮤지컬이라 티켓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

이 작품은 점술이라는 우리 사회의 하위문화를 소재로 한다. 예보한 날씨가 늘 뒤집혀 고민인 기상캐스터 맹신비(오나라·박민정)는 점술에 심취한 노처녀다. 그의 인생 카운슬러인 점쟁이 김보살(진선규)은 어느 날 그에게 신이 점지해준 짝이라면서 ‘돈 많고 서울대 출신에다 연구소에 근무하고 장동건 닮은’ 남자 오묘한(정상훈)을 소개한다. 문제는 맹신비의 마음속에 이미 신입 PD 고민수(성두섭)가 들어와 있다는 것. 뻔한 갈등구조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재미는 맹신비가 그들 중 누구를 택하느냐에 있지 않다. 진짜 재미는 점술과 관련한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희화화한 데 있다.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술과 TV 토크쇼 ‘무릎팍 도사’까지 우리 일상의 무속적 관행을 속속들이 까뒤집어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뮤지컬의 실제 주인공은 김보살이다. 능청맞은 그는 신통치 않은 점쟁이가 한국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여실히 보여준다. 눈치로 때려 맞히기, 성사 조건을 이것저것 많이 들기, 의심받을 때는 마구 겁주기, 제자가 치고 올라올 땐 목숨 걸고 작두타기…. 누구도 그런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알고도 속는 게 21세기 점쟁이에 대한 우리의 예의니까. 내년 2월 7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02-501-7888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