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 예술이 빚은 ‘3색 개성’의 하모니서울 잠실 ‘건축디자인초대전’
《미술관은 예술품의 수집과 보존을 위한 공간이다. 고대 궁중의 매장 공간을 연원으로 한 것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부유한 자본가의 미술품 수집 공간으로 이어졌다. 정치나 경제 권력의 ‘수집 공간’ 개념을 벗어나서 순수하게 예술품의 전시와 보존을 테마로 삼은 공간은 18세기 후반에 나타났다. 현대의 미술관은 대중을 위한 커뮤니티센터 기능과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교육 공간의 기능을 필요로 한다. 미술관의 공간 개념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원래 명칭은 ‘한남동 문화 콤플렉스’였다. 현대(現代)와 고대(古代)를 주제로 한 두 미술관과 하나의 어린이교육문화센터. 세 개의 건축은 중앙 로비인 ‘믹싱 체임버(mixing chamber)’에서 서로를 관입(貫入)하면서 만나 각자의 공간적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먼저 만나는 것은 콜하스가 설계한 어린이교육문화센터가 대지 경계면을 따라 만들어놓은 완만한 램프 진입로다. 세 가지 독립체를 연결한 이 문화센터 공간은 도시에 대한 건축의 유기적 관계성에 주목하는 콜하스의 스타일을 잘 드러낸다.
보타는 한국의 고미술 컬렉션을 고려해 도자기를 닮은 원형 천창의 로툰다(Rotunda·원통형 벽체와 돔형 지붕으로 이뤄진 공간)를 구성했다. 두 겹의 로툰다 사이에 이동을 위한 계단을 만들었다. 전시물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의 경험을 또 하나의 전시물로 제시한 것이다. 테라코타 외벽은 대지를 연장해 올려놓은 듯 보인다. 자연광을 다양한 표정으로 머금은 음영으로 매스의 양감을 드러낸다.
누벨은 구조체의 장력(張力)을 살려 기둥 없이 널찍한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붕 아래에 다양한 크기의 검정 박스 공간을 배열했다. 창밖 자작나무의 풍광과 전시물의 비주얼이 박스들 사이에서 교차한다. 공간 대부분은 지하에 묻었다. 외벽과 마주친 대지의 단면은 감추지 않고 돌망태 디테일로 마감해 시간의 흔적이 쌓이도록 했다.
세 건축가의 혼합은 무난하게 이뤄졌지만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건축가의 참여가 없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외국 건축가가 디자인하면 무조건 좋다’는 식의 가치관은 이 땅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건축 프로젝트에서 지금도 빈번히 찾아볼 수 있다.
21세기의 미술관은 전시 공간이라는 단일 명제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미술관은 새로운 미적 체험을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상적 브레인스토밍 공간’이 되고 있다. 리움의 출발은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이윤을 창출하는 데 힘을 얻으려 한 문화적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의 역사적 전개가 앞으로도 계속 그 시작과 맞닿아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술관은 공공을 위해 끝없이 열린 공간일 때 무한한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 이 땅의 문화를 재생산해 내는 발전소 같은 역할을 이 공간에 기대해 본다.
장윤규 국민대 교수·운생동건축 대표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