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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복잡해진 ‘개각 방정식’… 능력보다 도덕성 먼저 챙길 듯

입력 | 2009-07-16 02:57:00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위공직자는 모든 면 모범”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 나서
○개각시기 변화 오나 “기자들 8월초에 휴가 가라” 李대통령 휴가뒤 단행 예고
○검찰총장 인선 고민 “똑같은 실수 되풀이 안한다” 시급하지만 서둘지 않을 듯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거취 문제를 이례적으로 신속히 정리한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앞두고 따져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천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문제가 부상했다. 업무 능력, 코드, 지역 고려, 여기에 철저한 도덕성까지 고려해야 해 인적개편 방정식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인사검증

이 대통령이 천성관 카드를 과감하게 버린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평소 “일하다 보면 그릇도 깨고 손도 벨 수 있다”며 업무 수행 도중 발생한 착오나 과실은 감싸 안는 태도를 보여 왔다. 올 초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때 김석기 전 경찰청장 후보자의 경우 사퇴 여론에도 불구하고 내정을 철회하기까지 한 달 가까이 걸렸던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천 후보자의 경우엔 달랐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최근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를 해왔는데 철학적 바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고위 공직자가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고 그런 면에서 (이 대통령은) 기꺼이 본인 재산도 다 내놓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향후 인선에서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철저히 따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천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이 “거짓말하면 안 되지. 안 되겠구먼…”이라며 크게 실망했던 것으로 전해진 만큼 정직성도 주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의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으로는 이런 사안들을 걸러낼 수 없다는 점이다. 컴퓨터 전산망에 남는 각종 기록들은 검증할 수 있지만 개인간 사적인 돈 거래 등은 본인이 자복하지 않는 한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 마련에 나섰다. 인사팀과 검증팀(공직기강팀)을 통합해 시너지효과를 내도록 하는 방안, 공직기강팀을 이원화해 ‘크로스체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공직기강팀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장 직속기구로 개편해 힘을 실어주는 방안, 정보기관을 활용한 현장조사 강화 방안, 고위공직자 후보군에 대한 비공개 청문절차 도입 방안, 후보군이 어느 정도 압축되면 본인 동의를 얻어 일정 기간 언론 등의 검증을 받도록 하는 방안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공식 인사 라인이 아닌 비선 라인을 통한 추천을 원천적으로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 개각 사전 예고

도덕성 및 인사검증 문제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개각 시기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동안 이 대통령의 8월 초 휴가 전에 인적 개편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이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잠정적으로 잡은 일정이지만 (기자들도) 8월 초에 휴가를 가라. 휴가 도중 개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 휴가를 다녀와서 개각을 한다는 뜻인가”라는 물음에 “시기와 폭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지금은 그냥 구상 중이다. 어느 쪽으로 한다는 방향이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통령이 유럽 순방 도중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개각을 사전에 예고할 것이라며 개각 시기와 폭에 대한 추측성 보도의 자제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이 언제 어느 정도의 규모로 개각을 단행할지는 아직 안개 속이다. 천 후보자 낙마를 계기로 철저한 인사 검증의 중요성이 제기된 만큼 개각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자칫 제2, 제3의 천성관 사례가 나올 경우 향후 국정운영이 어렵게 된다. 따라서 청와대가 치밀하게 인사검증을 하는 동안 이 대통령은 휴가를 통해 정국 구상을 가다듬고 휴가를 다녀온 뒤 최종 점검을 거쳐 개각을 단행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반면 그동안 조용히 개각 준비를 해 온 만큼 검찰총장 낙마 등으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일신하고 정부 부처의 동요를 막기 위해 조기 개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나오는 상황이다.

○ 청와대 참모진 개편은 7월 말 단행?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개각과 별도로 먼저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대통령이 국회에서의 미디어관계법 등 처리 상황을 지켜본 뒤 7월 말 정동기 민정수석비서관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하고, 휴가 기간 정국 구상을 끝내고 나서 8월 중순 개각과 함께 ‘광복절 구상’을 제시하는 수순으로 정국 주도권을 계속 이어간다는 시나리오다. 청와대 참모진의 경우 장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사 검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천 후보자 낙마 등으로 인한 정치권의 청와대 참모진 개편 요구도 있는 만큼 청와대 진용을 먼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 후임 인선도 고민이다. 검찰총장과 차장의 자리가 동시에 비는 사상 초유의 검찰 수뇌부 공백 사태가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철저한 검증 없이 섣불리 인사를 단행할 수도 없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지금부터 원점에서 다시 할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면서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총장 후보군이 워낙 뻔하고 대부분 상시 검증 대상자들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판단과 추가 검증 절차만 남은 것일 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총장 후보는 검찰 조직 밖에서 고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천성관 사태의 이면에는 검찰 조직 내 파워게임이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