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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리포트]KT 유선통신 브랜드 ‘쿡’ 탄생과 성공스토리

입력 | 2009-07-11 02:59:00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KT 본사 사옥 옥상에 설치된 대형 현수막. 실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KT가 새 유선통신 브랜드인 ‘쿡’을 알리기 위해 만든 합성 사진이었다. 사진 제공 KT


쿡~ 나온지 석달 모두 제게 반했죠ㅋㅋ

“누가 허락도 안 받고 옥상에 저런 걸 달아놨어.” 올 3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KT 본사 사옥. 건물 관리부서의 담당자들이 발끈했다. 문제의 발단은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항공사진이었다. KT 본사 사옥의 옥상에 ‘쿡(QOOK)’이라고 적힌 빨간색의 대형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파격적 카피의 TV 티저광고(회사 이름을 숨기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광고)로 큰 화제가 된 쿡의 주인공이 KT라는 걸 암시하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 아니냐”며 회사에 문의전화가 걸려올 정도. 이 사진은 4일 동안 약 540만 명이 보는 큰 광고효과를 냈다. 많은 사람이 쿡이 KT의 새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돈으로 따지면 54억 원어치의 광고효과였다.

한편 씩씩거리며 옥상에 올라간 건물 관리인들은 허탕을 쳤다.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이 회사 건물 옥상에 대형 현수막을 합성한 사진을 은근슬쩍 인터넷에 올렸던 것. 물론 실제 현수막은 없었다. 미리 계산된 치밀한 마케팅에 회사 관계자들조차 속아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 파격적 메시지로 100일 만에 인지도 급상승

KT가 제2의 창업을 외치며 야심 차게 내놓은 유선통신의 새 브랜드 쿡이 이달로 100일을 맞는다. 쿡의 등장은 색달랐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파격적 카피로 ‘개고생 논쟁’을 일으켰다. 몇 년 전까지 공기업이었던 ‘점잖은’ KT가 ‘개고생’이라는 속어를 쓴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너무 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지를 좋게 하자고 시작한 광고 캠페인이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개고생의 ‘개’는 ‘동물(犬)’이 아니라 ‘정도가 심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로,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이라는 의미의 표준어라는 해명이 나오며 논란이 잦아들었다.

개고생 논쟁은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쿡은 세상에 나온 지 3개월 만에 브랜드가치 평가전문회사인 브랜드스톡이 발표한 2009년 2분기(4∼6월)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서 6위로 올라서는 빠른 성장을 보였다. 6월 들어서도 ‘신생아 발 도장’, ‘쿡TV 선우용여’편 등 다양한 쿡 광고 시리즈가 인기를 끌며 첫째 주 자체 보조인지도 조사(소비자에게 한 제품범주 내의 생각나는 브랜드를 열거하게 하는 조사)에서 인지도 91.6%를 기록하기도 했다.

광고 캠페인을 주도한 신훈주 KT 통합이미지담당 코디(차장)는 “집을 소재로 한 브랜드 스토리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혁신적인 방법을 찾다가 ‘개고생’이라는 강력한 화두를 선택했다”며 “개고생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집 나가면 생고생’이 됐다면 지금과 같은 효과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환진 한신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카피가 후크(갈고리) 역할을 해 단순하고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한 광고 마케팅이 성공을 거둔 것”이라며 “광고로 제품을 알리거나 신뢰를 구축하는 데 머물지 않고 스캔들 전략을 써서라도 소비자에게 화제성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홍지영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연구원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충격요법으로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한 뒤 브랜드 이미지를 재미있고 쉽게 전달해 성공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개고생” 파격메시지로 인지도 ‘쑥’… 직원참여 마케팅 통해 조직에 ‘신바람’

○ KT의 분위기를 바꾼 ‘쿡’

“네이버 사람들은 KT를 전혀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주인인 반면에 우리는 모두 월급쟁이여서다.” 이석채 KT 회장은 올 1월 취임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네이버를 거론하면서까지 KT 임직원을 자극한 것은 회사 내에 만연한 패배주의와 공기업적인 마인드를 버리자는 강한 주문이다.

쿡 브랜드 마케팅은 이런 KT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KT는 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집에서 ㅋㅋ QOOK’이라고 적힌 빨간 현수막을 나눠줬다. 각자의 집에 이를 부착하고 사진을 찍어 사내 포털에 올리는 ‘현수막을 걸어라’ 사내(社內) 이벤트를 벌였다. 이 회장이 앞장서 서울 송파구 문정동 자신의 집 베란다에 현수막을 걸었다.

그러자 내부 직원들의 열광적인 참여가 이어졌다. 한 지사의 직원들은 12대의 자동차에 현수막을 달고 카 퍼레이드를 벌였다. 야구장, 골프장을 찾아가 현수막을 걸었다. 이벤트를 시작한 지 10여 일 만에 2454건의 기발한 사진이 내부 인트라넷에 올라왔다. 3만8000여 명의 임직원을 매체로 활용한 티저 광고의 효과도 컸지만 그보다 내부의 신바람이 더 큰 수확이었다.

이후부터 KT 직원의 일하는 방식이 확 바뀌었다. KT는 올 6월 위키피디아 방식(누리꾼이 힘을 모아 만드는 백과사전)의 내부 아이디어 발굴 채널인 ‘KT 아이디어 위키’를 개설했다. 개설 직후 10일 동안 하루 평균 178건의 제안과 1만2969건의 댓글이 올라 왔다. 이 가운데 90건의 아이디어가 560여 건의 댓글로 보완되며 구체적인 사업방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내 일이 아니면 그만’이라는 오래된 공기업 마인드가 깨지고 있다.

KT 코퍼레이트센터장인 표현명 부사장은 “KT는 ‘올 뉴 KT(All New KT)’를 기치로 일하는 방식, 회사의 이미지, 서비스 경쟁력, 중소기업과의 협력방식 등을 모두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있다”며 “쿡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은 새롭게 변한 KT의 상징과도 같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불황기 유머광고… 공기업 이미지 벗고 친근하게▼

‘하우스위트(Housweet·집에서 달콤한 서비스를 즐긴다는 뜻), 파이(Pie·집에서 만드는 요리처럼 친근한 이미지), 모자이크(Mosaik·여러 서비스를 함께 사용), 나초(Nacho·바삭바삭한 즐거움)….’

KT가 유선통신 브랜드인 ‘쿡(QOOK)’을 만들기 전에 검토했던 후보작들이다. KT는 고민 끝에 즐겁고 편한 느낌을 주려면 한 음절 이름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쿡을 낙점했다.

쿡은 집에서 사용하는 전화, 초고속인터넷, 인터넷TV(IPTV)에서 풍부한 양질의 콘텐츠(Quality & Quantity)를 내가 원하는 대로 요리하듯(Cook) 사용한다는 의미다. 버튼을 누를 때 모습을 표현하는 의태어인 ‘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번의 클릭으로 집안에서 세상과 쉽게 소통하는 편리함과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이 브랜드 네임은 ‘쿡 인터넷’, ‘쿡 TV(인터넷TV)’, ‘쿡 집전화’, ‘쿡 세트(유선 결합상품)’ 등으로 확장성도 갖는다.

이동통신 브랜드인 쇼(SHOW)가 한 음절이라는 것도 한 음절의 브랜드 네임인 쿡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다. 무선과 유선을 묶은 결합 상품명은 자연스럽게 ‘쿡 앤 쇼’가 됐다.

브랜드 이미지(BI) 디자인도 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전자기기의 아이콘으로 구성했다. 전원을 켜는 버튼을 누르면(Q: 버튼 모양), 뛰어난 품질의 쿡 서비스가 눈앞에서 시작되고(O: On Air의 ‘O’), 언제나 새로운 콘텐츠를(O: ‘리플레시’ 기호 모양), 내 마음대로 즐긴다(K: 전자기기의 되감기 버튼 모양)는 의미의 친근하고 익숙한 인터페이스와 서비스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브랜드 이미지(BI) 색상도 차가운 계열의 파랑을 벗어나 따뜻한 빨강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기존의 KT 브랜드가 ‘크다’는 의미의 접두어인 ‘메가(mega)’를 사용한 것과 달리 유쾌하고 즐거운 의미를 반영해 KT의 무거운 공기업 이미지를 벗고 즐겁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담았다. 이런 이미지는 유머 광고가 통하는 불황기에 더욱 큰 효과를 발휘했다. 광고대행사인 오리콤은 최근 ‘불황기에 하지 말아야 할 광고 칠거지악’을 꼽으며 “절대 울먹이지 말 것. 정신적 피로가 늘어나는 불황기에는 유머나 가족 얘기가 눈길을 끈다”고 분석했다. 이인원 KT 홍보팀 차장은 “보통 1년 걸리는 브랜드 인지도 80% 달성을 2주 만에 해낸 것은 쿡 브랜드명을 쉽고 편하게 지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