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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장 넘긴 대신 갈등 떠안다

입력 | 2009-07-10 02:57:00


■ ‘유치 찬반 홍역’ 치른지 6년… 후유증 앓는 부안

상대측 운영 가게 안가고
품앗이 할 때도 끼리끼리
주민 38% ‘스트레스 장애’
“정부가 치유책 마련해야”

6년 전 전북 부안군은 ‘준전시 상태’나 다름없었다.

2003년 7월 11일 당시 김종규 전북 부안군수는 20년 장기미제 국책사업이던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지역 발전을 위해’ 부안 위도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은 찬반으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환경단체, 정치권이 가세한 반대 측은 격렬히 저항했다. 인구 7만 명의 부안에 1만 명이 넘는 경찰이 상주했다. 2004년 2월 주민투표로 방폐장 건립은 무산됐지만 후유증은 컸다. 구속자 40여 명 등 300여 명이 사법 처리됐고 중경상자가 500명이 넘었다.

부안은 국립공원 변산반도 등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풍광이 뛰어나고 쌀과 해산물이 풍부해 예부터 살기 좋은 고을이라는 뜻으로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 불렸다.

6년이 지난 9일 부안은 겉으로는 평온했다. 당시 매일 저녁 수천 명씩 모여 시위를 벌이고 화염병이 난무하던 부안읍 봉덕리 부안수협 앞은 말끔했다. 반대 측 주민들이 2004년 세운 ‘핵 반대 대장부’ ‘핵 반대 여장부’ 두 장승만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 간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고도 넓었다. 부안 어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푹 곪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당시 이장을 맡았던 송사섭 씨(63·부안읍 서외리)는 반대시위를 벌이다 2003년 7월 14일 부안군청 앞에서 몸에 시너를 뿌렸다. 그는 지금까지 눈의 통증과 화상으로 인한 상처로 고생하고 있다. 송 씨는 “지난주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인근 개암사에 놀러갔다가 찬반논쟁이 다시 붙어 말다툼 끝에 어색한 분위기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말했다.

건축기술자였던 이상공 씨(62)는 시위에 나섰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을 받던 2004년 아내가 우울증이 겹쳐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됐다. 이 씨는 “바닥이 좁아 누가 찬성했고 반대했는지 다 드러나 있기 때문에 상처도 더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의견이 달랐던 상대측이 운영하는 가게는 요즘도 잘 가지 않고 품앗이를 끼리끼리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입장이 달랐던 사람끼리는 앙금이 남아 초상이 나도 솔직히 갈 맘이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6월 부안 현지 순회상담을 한 결과에 따르면 부안주민들은 타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을 ‘님비(NIMBY·기피시설 반대)의 표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집단적 무기력증과 허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에서 144건을 분석한 결과 알코올의존증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무려 67%나 됐다. 전체의 3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였으며 치료를 요하는 사람이 23%였다.

하지만 갈등을 풀고 화해의 길로 나가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부안군은 지난해 5년 만에 군민의 날 행사를 여는 등 주민 화합을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올 1월 갈등조정 전문가와 학계 인사 등 9명으로 ‘부안 공동체 회복과 미래를 위한 포럼’을 발족했고 주민토론회 개최와 자료 수집도 계속하고 있다. 부안군은 사회갈등연구소에 맡겨 부안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치유책을 모색하는 백서를 올해 안에 펴낼 계획이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폐장 유치를 신청했던 전 군수가 출마 움직임을 보이면서 찬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부안사태는 공공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갈등으로 부안문제 해결은 평택이나 제주 해군기지 갈등 등 유사한 국책사업 해결과 사후관리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안=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