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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링크]‘불도저’ 옐친, 식성도 불도저

입력 | 2009-07-04 02:52:00


◇미식견문록/요네하라 마리 지음·이현진 옮김/260쪽·1만2000원·마음산책

일본의 수필가인 저자는 어린 시절을 체코 프라하에서 보내고 러시아어 동시통역가로 전 세계를 여행했다. 호객행위를 위해 갓 죽은 사슴을 전시해 두는 체코의 정육점부터 러시아 연방 자치공화국 사하의 수도에서 체험한 얼음낚시까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37편의 ‘음식견문록’을 펼쳐놓는다.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는 염소젖이 자주 등장한다. 알프스 산장의 식사에 염소젖은 필수다. 동화에는 하이디가 처음 산장에 맡겨진 날 할아버지가 내온 염소젖을 마시고 “이렇게 맛있는 밀크는 이제까지 마셔본 적이 없어요”라고 탄성을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동화를 읽고 염소젖에 환상을 가졌던 저자는 열네 살 여름 부모님과 알바니아의 해안에 휴가를 가서 염소젖을 처음 마신다. ‘틀림없이 맛있을 거야’라고 주문을 걸고 익숙해지려 애써보지만 참을 수 없는 암내에 결국 염소젖 먹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 뒤로 동화를 읽을 때마다 염소젖 냄새가 떠올라 인상을 찌푸리게 된 저자는 “염소젖의 맛을 모를 때 이 동화를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다.

프라하에 머물며 러시아 과자 ‘할바’를 맛본 저자는 “처음 맛보지만 처음 같지 않고 왠지 그리운 맛”, “국제적으로 통하는 맛”을 잊지 못해 그 뒤로 줄곧 할바 과자를 찾아다닌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비슷한 이름의 ‘할바인타르’라는 디저트를 먹어보기도 하고 프랑스어사전과 영어사전을 뒤져 ‘할바(halva)’의 정의를 찾기도 한다.

스페인어 통역사에게는 스페인의 국민과자 ‘폴보론’을 얻어먹고 영어 통역사에게는 인도의 전통과자 ‘할루아’의 조리법을 얻는다. 모두 비슷한 재료에 비슷한 맛이지만 바로 그 할바의 맛은 아니다. 실망한 저자에게 해답을 준 것은 러시아의 역사학자이자 요리연구가인 포흘렙킨의 책 ‘요리예술대사전-요리법 첨부’다. 할바의 기원과 재료, “일정한 밀도와 끈기와 온도가 될 때까지 거품을 낸 뒤 이 거품을 저어가며 식혀야 한다”는 조리법을 담은 글을 읽고서야 저자는 만족한다.

저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과의 음식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들이 일본을 찾았을 때 통역을 맡았던 저자는 이들의 식사 취향을 모두 지켜봤다. 고르바초프는 초밥이나 회는 싫어했지만 샤부샤부나 스키야키 등 익힌 음식을 즐겼다. 반면 옐친은 회와 초밥은 물론이고 참새구이에 낫토까지 모든 음식을 좋아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좌우세력의 균형 잡기에 노심초사한 고르바초프와 극좌파를 넘어 아예 소련을 붕괴시킨 불도저 옐친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소풍’(창비)은 소설가 성석제 씨가 쓴 음식 이야기다. 어릴 적 저자를 유혹했던 자장면부터 너비아니, 냉면 등 우리나라 음식과 베트남 쌀국수, 미국의 게 요리 같은 외국 음식을 먹으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담았다. 소설가 공선옥 씨는 ‘행복한 만찬’(달)에서 보리밥, 고들빼기, 봄나물 등 자연 속 우리 음식재료의 내력과 그에 얽힌 추억에 관해 26편의 글을 썼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작가정신)는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먹은 오리 요리, 뉴욕의 차이나 레스토랑에서 나온 생모시조개 등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 32편을 엮었다. ‘음식사변’(산해)은 양배추의 효능을 소개한 카토의 글, 알렉상드르 뒤마가 커피에 대해 쓴 에세이 등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여러 인물의 글을 모은 책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