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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심야학원 금지 입법 위헌소지”

입력 | 2009-07-03 03:00:00


“사교육대책 교과부 중심으로”

李대통령 ‘곽승준 정두언 vs 교과부’ 두달여 정책 논쟁 교통정리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학원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에 대해 “오후 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금지하는 내용을 입법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으니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교과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보고받은 뒤 “국세청 등을 동원해 단속을 강화하면 학원들의 심야교습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2일 전했다.

이 대통령이 학원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에 대해 견해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는 그동안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등이 주도해왔다. 이에 대해 안 장관 등 교과부는 부정적이어서 마찰을 빚어왔다.

이 대통령은 또 이 자리에서 “앞으로는 교과부가 중심이 돼 사교육대책을 추진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안 장관이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정책을 관장하고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은 교과부 장관”이라면서 “연구소나 각종 자문회의에서 발표하는 것들은 어젠다이고 교과부가 발표하는 것만이 정책”이라고 말한 것은 이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두 달여 동안 끌어온 학원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 논란

곽 미래기획위원장은 4월 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오후 10시 이후에는 학원들이 교습을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겠다”며 처음으로 학원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 방안을 제기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교과부는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일방적인 안”이라며 입법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쳤고, 결국 5월 18일 교과부와 한나라당 간 당정회의에서 학원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는 무산됐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먼저 학원 심야교습 금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정 의원과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6월 입법화를 재추진하면서 무게의 축이 입법화 쪽으로 다시 기우는 양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입법화에 반대하는 교과부를 질타하는 발언들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입법화에 더욱 힘이 실리는 듯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사교육 관련 집단세력이 세다는데 그래서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잘 안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뒤 안 장관에게 “장관도 (사교육 관련 집단세력이 세서) 그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또 “내 딸도 정부의 교육정책을 안 믿는데 국민이 어떻게 믿겠느냐”며 교과부를 질타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교과부의 보고를 받고 결국 안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교과부를 질타하면서도 사교육정책의 주도권을 교과부가 쥐도록 한 것은 ‘자리에 맞는 역할’을 강조하는 소신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정 운영에서 사적 채널의 가동이나 비선조직의 영향력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각 부처가 중심이 된 국정운영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최근 1급 이하 간부의 인사권을 부처 장관에게 전적으로 일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측근 세력과 한나라당 의원 교과부에 손들까

이 대통령의 ‘교통정리’에도 불구하고 미래기획위원회와 일부 한나라당 의원이 교과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안 장관에게 “개혁하기 싫으면 딴일 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정 의원은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도대체 교과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안이 뭐가 있느냐. 교과부가 그렇게 잘했다면 교육 현실이 지금 이 모양이며 대통령이 화를 내고 질타를 했겠느냐”고 비판했다. 특히 안 장관이 “교육정책을 관장하고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교과부 장관”이라고 한 데 대해 정 의원은 “마치 아버지가 가족에게 자신이 아버지라고 강조하는 것과 같은 얘기”라면서 “수십조 원의 예산을 갖고 있는 교과부 장관이 교육정책을 결정하지 누가 하겠느냐. 당연한 얘기를 희희낙락하며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안 장관을 재차 정면으로 겨냥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