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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서거 전후 반응 확연한 차이 한국 정치문화 감성주의 때문”

입력 | 2009-06-08 02:50:00


■ 정치-심리-문화학자가 본 ‘노무현 신드롬’

“방송 ‘인간 노무현’ 집중부각… 감정과잉 불러
추모열기는 개인 애도… 정치 수용 회의적
화합 위해선 여권도 상대가치 존중해줘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지만 국민의 반응 또한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500만 명의 조문 행렬과 사자(死者)에 대한 감정적 몰입은 ‘노무현 신드롬’으로 불렸다. 대통령 재임 때 잇단 공격적 언사에 따른 ‘노무현 피로감’과 퇴임 후 뇌물 수수 혐의가 불거졌을 때의 국민적 실망과 비교하면 극단적인 변화다. 심리학자와 정치학자, 문화학자, 정치인으로부터 노무현 신드롬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를 들어봤다.》

○ 미디어의 감정 과잉

명지대 정치학과 김형준 교수는 노무현 신드롬을 ‘이중적 신념체계’로 설명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맞기 이전과 이후의 반응이 매우 다른 것은 한국 정치의 감성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예 자살’이 인정되는 동양적 가치관, 전직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맞은 데 대한 동정론 등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현 권력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사태’ 등을 거치면서 일각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아 리더 부재(不在)라는 ‘심리적 공백상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공백을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비집고 들어오면서 감성적인 반응을 불러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방송과 일부 신문의 보도 태도가 감정 과잉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컨설팅사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달리 방송에서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을 매우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손녀와 자전거 타는 이미지 등으로 재임 때보다 국민과의 간극을 줄인 측면이 있는데 이번에 방송을 중심으로 정치적 핍박과 서민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점을 집중 조명해 이성보다 감성이 반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노무현식 정치’ 살아날까

뜨거운 추모 열기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정치적 가치를 다시 검토하는 쪽으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이는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정치적 복권과도 연계돼 있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박기수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몰락은 기존 지지층의 반발을 야기한 원칙론 때문이었지만 이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의 바보스러운 원칙을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국제대학원 모종린 교수도 “관건은 노무현 신드롬이 2002년 ‘노무현 대선 연합’의 재결집으로 이어질 것이냐인데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를 했고 재임 때 지지율도 최소 20% 선을 유지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성민 대표는 추모 열기가 노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애도에서 비롯된 바가 크고 미디어에 의해 과포장된 면도 있는 만큼 이를 정치 영역으로 끌어오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신드롬은 ‘바보 노무현’ 혹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추모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그의 정치적 가치가 다시 수용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황상민 교수는 “민주당의 정치 공세에 국민들이 왜 고개를 갸우뚱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기존 정치 집단이 개입해 정치적 가치를 부여하면 과거 촛불집회 때처럼 대중들이 흩어져 버리는 현상이 재현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대결 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 “새로운 리더십 필요”

전문가들은 대부분 노무현 신드롬이 대규모 소요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예상했다. 박기수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통합과 용서를 원한 만큼 일반 국민이 급진적 시위 등으로 추도 문화를 확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과제를 잘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나라당 개혁성향 의원 모임인 ‘민본21’의 공동간사인 김성식 의원은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선택할 때는 과거 정부는 부정하라는 게 아니라 노무현식 가치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넘어서라는 의미였다”며 “그간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식으로만 비쳤다”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국민은 분배와 평등 등 진보의 가치도 보수의 시각에서 풀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로 화합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이를 위해선 상대의 가치를 존중해야지 서로 다른 점만 얘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