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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유혹 극복한 이우재 부장판사 “이래서 살아야한다”

입력 | 2009-05-06 02:58:00

“아프면 울고 옆사람은 등 두드리며 눈물을 닦아줘야 합니다.” 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만난 이우재 부장판사는 두 번 자살을 시도하며 ‘누가 내 고통을 알겠나’ 하는 고독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박영대 기자


“문제를 문제삼지 않으니 별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죽고싶을 정도로 우울할때

남의 마음속에 들어가보니

원망하던 응어리 녹아내려

최근 연예인자살 안타까워

서울동부지방법원 이우재 부장판사(44)는 안방 욕실에 있는 샤워기를 볼 때면 종종 웃음이 나온다. 3년 전 이 판사는 샤워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했다. 생사의 경계를 갈라놓을 뻔했던 샤워기에 얽힌 끔찍한 기억이 이젠 추억이 됐다.

당시 이 판사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심하게 앓았다. 주식에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렸고, 부부싸움도 잦았다. 하루하루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업무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어느 날부턴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30회)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 성적이 상위권이어서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로 임용될 때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던 이 판사는 갑자기 닥친 시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생각만 꼬리를 물었고 틈만 나면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했다.

2006년 4월 초파일, 그는 부부싸움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욕실 샤워호스로 목을 감았다. 숨구멍이 ‘컥’ 하며 막히는 순간 호스가 벽에서 뚝 떨어졌다. 욕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눈물을 흘렸다.

“호스가 빠지면서 찬물이 콸콸콸 쏟아지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이 몰려와 목을 맸지만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또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기도 해서….”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울증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며칠 뒤인 2006년 4월 어느 날 이 판사는 수면제 50알과 물 한 잔을 준비했다. 유서도 남겼다. ‘결행’을 앞두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었다.

“꿈속에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제 수의를 벗기는 거예요. 그때 나타난 어머니가 바로 저였던 것 같아요. 겉으론 죽을 준비를 하지만 속으론 그만큼 살고 싶었던 거죠.”

잠에서 깨어난 다음 날, 그는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병가를 내고 충남 계룡산의 한 수련원에 들어갔다. 산사에서도 삶의 의욕은 찾지 못했고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었다. 3주쯤 지난 어느 날, 아내가 초등학생 딸과 유치원생 아들을 데리고 절을 찾아왔다.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식구들과 작별할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헤어진 지 30분쯤 지났을까요.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앉아 있다 창밖을 내다보는데 아내와 애들이 그대로 비를 맞고 서 있는 겁니다. 순간 뭔가가 북받쳐 올라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이 판사는 2시간 동안 주저앉아 울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 처지에 대한 억울함이 눈물에 섞여 나왔다. 울음소리를 듣던 수련원생이 다가와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번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동안 원망했던 사람들이 한 명씩 떠오르는데 용서는 안 되지만 머릿속에서 대화가 되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가슴속 독이 녹아 내렸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마음속에는 “눈물은 인생을 치유한다”는 금언이 자리 잡았다. 마음을 추스른 이 판사는 4개월 만에 수련원에서 내려와 본격적인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죽을 놈이 살게 됐는데 뭘 더 바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니 빠르게 치유가 되면서 2007년 2월 업무에 복귀했다.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르고 동반 자살도 급증하는 것을 보면서 이 판사는 안타까운 심경을 말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때 인생의 바닥을 치고 나면 돌이켜봤을 때 별일이 아닐 수 있어요.”

1일 만난 이 판사는 말투가 빠르고 톤이 높았다. 중년의 나이에 휴대전화에 이선희의 ‘인연’ 등 ‘노래방 18번’ 제목들을 차곡차곡 저장해놓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더는 문제가 안 되더라고요.”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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