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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승환]브레인 없는 ‘두뇌강국 코리아’

입력 | 2009-04-23 02:58:00


‘작은 우주’라 불리는 뇌. 인류 최후의 미개척 연구 영역에 대한 선진국의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뇌 연구는 고령화와 융합으로 치닫는 21세기를 헤쳐 나갈 핵심 분야로 대두하고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조율하고 추진하기 위한 한국의 ‘브레인’은 실종된 상태이다.

뇌는 우리 몸의 지배자이자 마음의 원천이다.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생명유지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지기능의 장애로 바로 이어진다. 뇌를 이해하면 치매와 같은 노인성 뇌질환 치료를 통해 점차 가속화하는 고령화 시대의 삶의 질 향상에 공헌할 수 있다. 또 ‘꿈의 컴퓨터’인 뇌의 작동원리를 모방하면 공상과학영화 ‘아이로봇’처럼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뇌는 근원적으로 매우 복잡하여 전체를 이해하려면 생명과학과 의학뿐 아니라 심리학 물리학 공학 등 학제 간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뇌 연구는 자연적으로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을 아우르는 최고의 융합학문이 될 수밖에 없다. 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기초원천기술은 미래 신산업 창출의 보고이자 미래국가경쟁력의 견인차여서 각국이 앞 다퉈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뇌연구 촉진법’을 제정하면서 뇌 연구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범정부 차원에서 1차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지난 10년 동안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총 3000억 원을 투자해 다양한 뇌 특화 연구 성과와 함께 연구 인력이 크게 늘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뇌 분야의 우수한 인적자원에 비해 연구투자는 아직 미국의 164분의 1, 일본의 17분의 1 수준이고 국가적인 뇌 연구 인프라는 크게 부족한 현실이다.

작년 말 정부는 뇌 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향후 10년간 1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제2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기존 뇌 연구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국내 IT, NT 융합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국가 뇌융합 연구 전문기관을 설립하여 이를 선도하기 위해서다. 세계적 뇌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야심 찬 계획은 유감스럽게도 현재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1차 계획 종료 후 후속 사업의 시행계획을 제때 수립하거나 실행하지 못해 연구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뇌 연구 선점 경쟁이 가속화하는 시점에 관련기기는 노후화되고 신진 연구 인력이 현장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힘들게 구축한 연구 인프라가 와해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적으로 뇌 연구의 방향을 책임지고 조율하는 브레인이 없다는 점이다. 뇌연구촉진법에 의한 최고결정기구인 뇌연구촉진심의위원회는 일괄 폐지대상으로 지목됐고 실무 추진을 위한 위원회도 올해 초 구성했지만 활동이 미약해 식물인간 상태나 마찬가지다. 국가 뇌 연구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이들 위원회가 무뇌증을 극복하고 국가 뇌 연구의 컨트롤타워로 하루빨리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국가 뇌 연구원 설립의 전략적 추진과 기초원천 연구지원의 확대를 담은 국가 뇌 연구 포트폴리오의 구축 등 투자계획의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우수한 인재이다. 이들의 창의적 두뇌가 가진 무한한 잠재역량의 발휘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성큼 다가온 고령화 사회와 융합기술의 시대를 선도할 뇌 연구에 획기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빨리 복구해서 ‘두뇌 강국 코리아’의 꿈을 힘차게 펼쳐나가자. 관심과 투자 없이 발전이 가능한 분야는 없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