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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온파 해묵은 주도권 갈등 ‘추문’으로 다시 불거져

입력 | 2009-02-07 03:01:00

심각한 민노총 지도부6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민주노총 2009년 제3차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진영옥 위원장(오른쪽) 직무대리와 이용식 사무총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사건 공개되기까지

現 이석행위원장 측근 작년 12월 女조합원 성폭행 미수

피해자측 “다수의 민노총 간부, 술자리 등서 계속 퍼뜨려”

조직장악 싸움에 인권보호는 뒷전… 도덕성 커다란 흠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6일 핵심간부의 여성조합원 A 씨 성폭행 미수 사건과 관련해 서둘러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부위원장 5명이 사퇴한 것은 일단 파문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조직 내에서는 여러 계파로 갈려 대립하고 있지만 이 사건이 확대될 경우 운동권 전체에 대한 도덕성에 흠집을 주고,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을 계기로 한 대정부 투쟁의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노총은 노선과 출신, 투쟁 성향이 다른 여러 계파의 연합체 성격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위원장 선출, 주요 현안 대응 방식 등을 놓고 그동안 끊임없이 계파 간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사건이 외부에 공개되는 과정을 보면 내부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이 이번 사건의 계기로 노동운동 방식의 전환과 자기정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민주노총이 발설?”=A 씨의 대리인 측은 5일 기자회견에서 “다수의 민주노총 간부들이 최소 3, 4주 전부터 술자리 등에서 이 사건에 대해 여과 없이 말하기 시작하고 끊임없이 소문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대리인 측은 “이 소문은 노동부, 노사정위원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경찰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자신들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도 있는 사안을 일부러 흘리고 다닌 셈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강경파(중앙파, 현장파)와 온건파(국민파)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강경파 안에서는 현 지도부인 이석행(국민파) 위원장 체제의 투쟁 방식이 너무 온건하다며 불만을 표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만이 쌓이던 중 이 위원장의 측근이자 온건파인 K 간부가 마침 성폭행 미수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

강경파 측이 올해 말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온건파 지도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기 위해 이 사건을 외부에 흘렸다는 분석이 많다.

노동계에서는 6일 허영구 부위원장 5명의 자진 사퇴도 자연스럽게 지도부 총사퇴를 유도하기 위한 강경파의 전략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강경파가 이번 사태를 빌미로 지도부를 물갈이 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질적인 계파 갈등=민주노총의 중앙파와 현장파는 노사관계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투쟁을 통해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려는 강경파(PD 계열)다. 전체 대의원 중 중앙파가 30%, 현장파가 10∼15% 정도를 차지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온건한 국민파는 전체 대의원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투쟁에 있어 어느 정도의 대화와 참여를 인정하고 있다.

2005년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당시 국민파였던 이수호 위원장이 노사정위원회 가입을 위한 찬반투표를 실시했을 때 중앙파와 현장파 등 강경파들이 회의 단상을 점거해 강·온파 간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당시 이수호 위원장이 총사퇴한 것도 직접적인 원인은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금품비리 사건이지만 이면에는 민주노총 내부의 뿌리 깊은 계파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이 위원장이 연말까지만 집행부를 유지하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음에도 반대파가 즉시 사퇴를 요구한 것은 다음 해 벌어질 위원장 선거를 염두에 둔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계파 구도 때문에 민주노총의 지도부 선거는 항상 강경파 대 온건파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선거 후 ‘지도부 조기 사퇴 및 총사퇴’ 등의 구호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끊이지 않는 도덕성 파문=민주노총은 2005년 10월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로 당시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강 부위원장은 산하 택시운송조합으로부터 8000여만 원을 받았으며, 직접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1월에는 기아자동차 노조 집행부가 직원 채용비리 문제로 총사퇴했다.

당시 검찰 수사에 따르면 부정 입사자는 무려 120명에 달했고, 이 과정에서 24억여 원의 돈이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노총 최대 단위조직인 현대자동차에서도 유사한 비리가 발생했다. 검찰은 2005년 5월 이 회사 노조 간부인 정모(당시 42세) 씨와 염모(당시 45세) 씨 등 8명을 취업 희망자로부터 돈을 받고 입사를 추천해 준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입사 희망자들로부터 적게는 2000만 원에서 많게는 4억여 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입사지원서 상단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 추천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다시 회사 임원에게 취업을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조간부들은 이렇게 받은 돈으로 증권이나 선물투자를 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하고 심지어 골프, 부채 변제, 부업 개업비용, 생활비 등 개인용도로 대부분 사용했다.

명지대 경영학과 이종훈 교수는 “민주노총은 이제 대승적으로 국민만 보고 행동하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간의 문제점들이 왜 발생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