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임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성태 한은 총재와 금통위원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사상 최대 폭인 0.75%포인트 내렸다. 김미옥 기자
■ 기준금리 0.75%P 인하
李한은총재 “위험 당분간 계속” 추가인하 시사
유동성 공급위해 은행채 5조 ∼ 10조원 규모 매입
시중銀 예금금리 속속 인하… 대출금리도 하락
키코계약 中企에 외화대출… 흑자도산 우려줄듯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7일 단행한 사상 최대 폭(0.7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하 및 은행채 매입 조치는 신용경색을 풀고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 경제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강도 포석이다.
이날 금통위는 한은 직원들마저 놀랄 정도로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렸다. 또 ‘돈맥경화’에 시달리는 국내 자금시장의 물꼬를 틔우기 위해 은행채 매입 등 대책을 발표했다.
○ 한달음에 세 발짝 파격 인하
금통위는 한 번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베이비 스텝’ 방식을 버리고 한달음에 세 발짝을 내딛는 파격을 선택했다. 이달 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시중금리는 오히려 상승해 기업과 가계의 대출 원리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3.9%(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로 떨어지자 금리인하의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성태 한은 총재는 “내수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고 수출이 계속 잘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시장에서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아무래도 (내수침체, 수출 둔화 등) 이런 쪽의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고 주요 선진국도 잇달아 금리를 인하해 금리인하→원화자산 인기 하락→환율 상승의 부작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날 골드만삭스증권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한 것은 인플레이션 예방보다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둔 결정으로 보인다”며 “한은이 내년 1분기(1∼3월)에 기준금리를 적어도 0.25%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은행채에도 특단의 조치
한은은 자금시장 경색과 시중 금리 상승을 일으키는 ‘병목 현상’의 원인인 은행채에 대해서도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한은이 채권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시장의 돈줄을 조정하는 공개시장조작 대상 채권에 국고채, 정부 보증채권, 통화안정증권 외에도 은행채와 공기업의 특수채를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는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한은에 은행채를 맡긴 뒤 일정 기간 현금을 얻어 쓸 수 있게 된다. 은행채 수요가 늘어 올해 민간 은행들은 올해 말까지 돌아오는 15조 원(국책은행 발행 채권 제외)의 은행채 만기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 발행 채권,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 등 특수채도 대상에 편입해 중소기업이나 주택담보대출 등 실물시장에 한은이 자금을 풀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점도 주목된다.
○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급락 가능성
이날 5개월 만에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하락하는 등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은행들도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속속 인하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예금금리를 0.3∼0.75%포인트 낮추고 11월 3일 신규 예금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6개월 정기예금 금리는 연 6.24%에서 5.94%, 1년 정기예금은 7.05%에서 6.75%로 각각 0.30%포인트씩 내린다. 국민 신한 하나 기업은행 등도 조만간 최대 0.75%포인트까지 예금금리를 인하할 계획이다.
CD금리와 연동되는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줄줄이 떨어졌다. 28일부터 적용되는 하나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7.14∼8.44%로 27일보다 0.14%포인트, 우리은행은 연 7.06∼8.36%로 0.03%포인트, 신한은행도 연 6.93∼8.23%로 전 거래일보다 0.03%포인트 떨어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CD금리 하락 추세가 이어지면 이번 주 중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중기 외화대출상환 1년 더 연장
이와 함께 27일 이전까지 키코(KIKO) 등 통화옵션 계약을 한 기업들이 외화대출을 받아 일단 필요한 달러를 갚은 다음 수출대금이 들어오면 외화대출을 상환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는 해당 기업이 시장에서 원화를 주고 달러를 사서 갚아야 했다. 환율이 급등하면 기업의 환손실이 커지고 자금을 감당할 수 없게 돼 ‘흑자도산’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 엔화 등 저(低) 금리의 외화를 들여다 운전자금으로 활용했던 기업의 외화대출 상환도 1년간 더 연장되고 상환횟수 제한도 폐지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외화대출의 경우 서류상으로만 외화가 오고가는 것이기 때문에 환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 은행 자금 조달 방식 바뀌어야
이번 조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은행들이 예금보다 은행채와 CD 시장성 수신에 의존하는 자금 조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 경영개선 계획 등의 추가 대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는 이날 은행채를 공개시장 조작 대상 증권에 편입하면서 “감독당국이 원화 유동성 비율의 한시적 완화 또는 산정 기준의 단축을 통해 은행채 발행 수요를 줄이는 한편 은행의 시장성 수신 의존도를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영상 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