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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원종원]깜짝쇼 뮤지컬, 한 박자 쉬자

입력 | 2008-10-18 02:56:00


요즘 우리 뮤지컬계에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래, 해마다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며 팽창 일로를 걸어왔다. 서울에서만도 연간 180편이 넘는 작품이 앞 다퉈 무대에 올려졌고, 매출 신장도 해마다 20%에 육박하는 고속성장세를 기록해 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요즘 들어선 돈 벌었다는 제작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더니, 급기야 작품의 수적 팽창도 조금씩 위축되는 모양새다. 물론 대목이라는 연말에 대형 작품이 몰려 있는 탓에 가을에 막을 올리는 공연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분명 이전과는 다르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급작스러워 보이는 시장의 어려움도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배경이 있고 이유가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제는 인건비 상승이다. 작품이 늘어나다 보니 필연적으로 제작 인력이나 인기 배우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등장하고, 자연스레 몸값도 따라 치솟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작 여건의 악화는 다시 시장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풍요 속 빈곤’이 ‘속 빈 강정’ 같은 시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조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높은 가격의 티켓도 만만찮은 골칫덩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할인정책 대신 액면가를 낮춰 좀 더 대중친화적인 시장을 형성해야 하건만, 당장 기업 판매나 투자 유치에 불리할까 두려워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누가 앞장서 실현하기에는 껄끄러운 ‘고양이 목의 방울’이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호흡 짧은’ 우리의 시장 환경이다. 영상물과 달리 공연은 오랜 기간 담금질을 거쳐 완성될 때 비로소 생명력이 강화되는 장르적 속성이 있다. 느닷없이 시장에 내놓는다고 곧바로 흥행으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의미다. 깜짝쇼나 대규모 자본의 투입에 앞서 단계별 시장을 통해 지속적인 검증과 보완의 시간을 보내고, 완성도를 고양시키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품의 ‘깊은 맛’은 그래야 완성할 수 있다.

비단 제작자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약해져 가는 불길을 다시 지피기 위해서는 밀고 당기는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 뮤지컬의 성장에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기보다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한 정·관계의 지원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자면 흥행 콘텐츠의 장기 공연이나 ‘오픈런’이 가능하도록 전용관 시설을 지원하거나 의지가 있는 사업자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공공적 성격의 값싸고 편리한 연습장을 마련하고, 여유로운 공간과 시설이 확보된 리허설 공간을 제공하는 방안도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다. 요컨대 ‘될성부른 놈 떡 하나 더 주는’ 당근책을 고민해야 한다.

공연장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섣부른 이윤 나누기를 논하기에 앞서 제작자나 예술가가 맘껏 날개를 펼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단기적인 계산으로 주판알 먼저 굴리기보다 장기적인 시각과 안목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공공적 성격의 공연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기적인 사업성과에 매몰되기보다 장기적인 환경의 조성과 적절한 지원이 뒤따를 때 우리 문화 콘텐츠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관건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낼 것인가의 문제다. 현명하게만 대응한다면 작금의 어려움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예방주사에 불과하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