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79년 성수대교 준공

입력 | 2008-10-16 02:59:00


찬사…15년뒤 참사

‘국내 최초의 철강제 트러스 교량.’

‘한강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

1979년 10월 16일 준공식을 가진 성수대교에 쏟아진 찬사였다.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개통된 성수대교는 다리의 외관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교각 사이를 최대한 넓게 하는 트러스 공법을 도입했다.

성수대교 교각 사이의 거리는 120m로 준공 당시 국내 다리 중 교각 사이의 거리가 가장 길었다.

다리 난간도 우리나라 기술진이 유럽지역 교량을 보고 소형차량의 추락 사고를 방지하도록 새로 개발하는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으로 만들어졌다.

동아건설이 맡은 성수대교 공사는 1977년 4월 착공돼 2년 6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당시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개통 테이프를 끊은 뒤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그러나 성수대교가 받은 찬사는 15년 뒤 비난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경 성수대교의 5번과 6번 교각 사이의 상판 48m가 무너졌다. 때마침 사고 지점에 있던 버스 1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가 함께 추락하는 바람에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등굣길에 버스에 탔던 무학여중고 학생 9명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고조사반은 붕괴의 원인을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된 플레이트와 수직재의 용접불량이라고 밝혔다. 사고조사반은 다리가 설계대로만 시공됐다면 붕괴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공법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면서 동아건설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서울시교육청은 그 다음 해부터 고교 배정 때 한강 다리를 건너 통학하지 않도록 강남북 교차 배정을 금지했고 이 원칙은 지금도 살아있다.

무너진 다리의 복구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토목학계는 성수대교를 수리해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시민 의견은 이에 부정적이었고 결국 시민의 정서를 감안해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현대건설이 1997년 7월 새로 지은 성수대교는 이후 또 한 번의 개량공사를 거쳐 2004년 9월 재개통됐다. 폭 19.4m, 길이 1160m의 4차로였던 다리는 8차로로 확장됐다.

하지만 생때같은 가족을 잃은 붕괴사고 희생자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고, 무너져 내린 ‘건설 한국’의 자존심은 아직도 복원 중이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