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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미래 모델 ‘도이체방크’ 들여다보니…

입력 | 2008-06-10 03:00:00


기업금융 분야 오랜 ‘내공’

PF영역서 차별화 성공

소비자 금융사업 과감히 매각

외국 금융사 인수로 몸집 키워

보수적 기업문화로 리스크 관리

금융권에서는 ‘투자은행’ 하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처럼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 증권사 업무 중심의 투자은행을 많이 생각한다. 적지 않은 시중 은행과 증권사들도 자본시장통합법 통과 이후 미국식 투자은행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원회가 한국산업은행 민영화의 벤치마킹 모델로 영미(英美)식 투자은행이 아닌 독일의 도이체방크를 언급하면서 금융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금융위와 산은은 민영화 후 산은지주회사를 기업금융 중심의 투자은행(CIB·Corporate & Investment Bank)으로 키우기 위해 기업고객을 기반으로 투자은행 전환에 성공한 도이체방크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채권 발행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특화한 투자은행 모델을 도입해 매출 기준 세계 2위의 투자은행으로 변신했다. 소매금융보다는 기업금융을 ‘주력 사업 모델’로 삼고 있는 산은이 도이체방크를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 장점으로 승부수를 띄워라

도이체방크는 1870년 베를린에서 설립됐다. 대형 상업은행으로 유럽에서 명성을 누렸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증권사들이 급성장하면서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투자은행업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86년 영국이 한국의 자본시장통합법과 비견되는 금융서비스법을 제정한 뒤 ‘금융회사 M&A 시장’이 열리자 도이체방크는 1989년 영국의 가장 오래된 증권사로 JP모건의 계열사였던 모건 그렌펠을 합병했다.

1998년에는 당시 미국의 6대 은행이었던 뱅커스 트러스트를 인수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후 미국 자산운용사 스커더 인베스트먼트(2002년), 러시아 투자은행 유나이티드파이낸셜그룹(2006년)을 차례차례 매입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도이체방크는 이 같은 M&A를 통해 조직을 키우면서도 미국식 투자은행의 길로 가지 않고 기존의 강점을 살려 사업영역을 차별적으로 구축했다.

계속해서 덩치만 키운 것은 아니다. 2002년 도이체 헤롤트 보험사 등을 스위스 최대 보험사인 취리히파이낸셜서비스에 매각하고, 미국 내 소비자 신용사업부인 도이체파이낸셜서비스(DFS)를 GE에 매각하는 등 비주력 사업을 과감히 잘라냈다.

도이체방크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현재 전 세계 투자은행 가운데 2006년 기준 IPO와 M&A 등 주식자본시장(ECM) 분야에서는 8위지만, 채권 발행 등 부채자본시장(DCM) 분야와 외환거래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전문인력 관리가 관건

도이체방크는 투자은행이면서 리스크 관리에 있어서는 깐깐한 문화를 갖고 있다.

도이체방크에서 근무한 국내 증권사의 한 간부는 “은행의 보수적 조직 문화가 뿌리 깊어 갑갑할 정도로 자산 관리 등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철저하다”면서 “큰 금융사고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한 것은 이런 보수적 문화가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위기 이후 대부분의 투자은행이 실적 부진을 기록했지만 도이체방크의 2007년 순이익은 65억 유로(약 10조2858억 원)로 2006년보다 7% 늘어난 것도 깐깐한 리스크 관리 덕분이다. 투자은행은 ‘전문가들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는 점에서 이런 선례를 산은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산은이 투자은행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력 구조와 임금 체계를 고치는 데서 나아가 국책은행 시절의 수직적 조직에서 수평적이고 성과 중심의 조직으로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