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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115호 경남 의령용덕초등교

입력 | 2008-05-27 02:58:00

“마을 도서관은 우리에게 맡겨 주세요!” 용덕초등학교 도서부원 양성진 양(왼쪽)과 마을도서관장 백철숙 씨는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책 전도사 모녀’가 되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도서관 지킴이’ 백철숙-양성진 모녀

“엄마, 책 추천요령 가르쳐줄까?”

“어쭈, 나도 왕년엔 문학소녀야 !”

“엄마, 이제 학교 매일 와야 되는 거 알제? 동네 사람들한테 책 추천해줄 정도는 돼야 마을도서관장이라 안 하겠나?”(도서부원 양성진 양)

“일단 엄마부터 보자. 농사일 한다고 바빠서 책 못 읽은 지 오래됐다 아니가.”(마을도서관장 백철숙 씨)

마을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느라 정신없는 백 씨를 딸 성진이가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고 있었다. 도서부원인 성진이는 이번에 관장으로 위촉된 엄마가 못 미더운 모양.

21일 오후 경남 의령군 용덕면 용덕초등학교. 본보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 네이버가 함께 진행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캠페인의 115번째 마을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 캠페인의 대상 학교로 선정돼 3000여 권의 책을 기증받아 지난해 말 문을 연 교내 도서관을 학교마을도서관으로 재단장한 것.

전교생 57명의 아담한 이 학교에서 성진이(12)는 유명한 도서부원이다. 지난해 말 교내 도서관에서 ‘경쟁자들을 가위바위보로 물리치고’ 선발됐다.

성진이의 하루 평균 독서량은 3권이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로 꼽는 성진이는 이제 친구들의 독서 취향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겐 ‘엄마 울지 마’ 같은 소설이나 위인전을 추천해줘요. 남자애들에겐 만화로 된 ‘무서운 게 딱 좋아’가 인기가 좋고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는 찾는 애들이 많아 대출됐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보기도 했어요.”

가장 보람된 순간은 친구들이 ‘추천해준 책으로 독후감을 써서 칭찬받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할 때라고 한다. 도서부원 생활이 즐거운 건 책 읽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성진이는 말한다.

“어떤 책에나 소중한 교훈이 있어요. ‘흥부 놀부’는 어릴 적에 처음 읽은 책인데 ‘선은 악을 이긴다’는 점을 배울 수 있잖아요. 책의 보물을 손에 넣은 거죠. 종일 도서관에 있어도 아지트 같아 행복해요.”

‘도서관이 키운 아이’ 같은 성진이는 “이번에 마을도서관이 생겨 어른들도 ‘책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마을도서관장으로 위촉된 백철숙(36) 씨는 개관 기념 백일장에서 학교 다닐 때 도서부원 시절을 회상한 글 ‘책에게’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도서관 구석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너에게 손이 갔어. 그러다 너에게 그만 푹 빠져 힘든 현실에서 편안해질 수 있었단다. … 나에게도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줬으면 해.’

백 씨는 “책을 보려면 차를 타고 의령도서관까지 가야 했고, 또 책이 낡고 오래된 데다 신간도 부족했다”며 “이렇게 많은 책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온 것 같다. 마을도서관장으로서 주민들이 책을 자주 접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개관식에는 김채용 의령군수, 김용길 의령교육청 교육장을 비롯해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군수는 “마을사람들 모두가 한데 모일 수 있는 곳이 학교인 만큼 이곳이 문화센터의 역할도 해내길 바란다”며 “용덕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앞으로 의령군 내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마을도서관이 개설되는 데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성진이는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새로 온 책 3000여 권을 둘러보며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 이장님한테 ‘이달의 도서’를 정해보자고 하는 건 어떻겠노? 응?”

의령=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