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까지 충남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진용 개인전에 선보인 ‘내 서랍 속의 자연’(320×700×39cm).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1000권의 책 이미지를 세필로 그리고 300개의 서랍 안에는 관련 이미지와 오브제를 담아놓아 관람객들이 열어볼 수 있게 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설치작업과 함께 극사실회화 20여 점을 선보인다. 어른 3000원, 학생 2000원. 041-551-5100 사진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6월 1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되는 중국작가 아이웨이웨이의 ‘Fairytale-Chairs’. 청나라 때 의자 100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작업으로 지난해 독일 카셀도큐멘타의 넓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1001개의 의자 중 일부다. 아티스트, 큐레이터, 건축가로 활동 중인 작가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다. 02-734-6111 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
오래된 수동카메라와 타자기, 멈춘 시계들과 나침반, 손때 묻은 축음기와 쌍안경…. 시간의 무늬가 새겨진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정겹고 신비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오래된 물건의 존재감은 절대 복제될 수 없음을 몸으로 웅변하듯이.
25일까지 충남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진용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A place for the memory’. 실제 작업실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옮겨 온 설치작업이다. 작가가 수십 년간 수집해 온 사물은 세월을 이겨내고 새로 생명을 부여받는다. “그의 수집품들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고, 수많은 경험을 거쳐서 존재하는 물건이다. 관람객들은 그 낯섦 속에서 오래된 물건이 가진 친숙함과 따뜻한 감성을 느끼게 된다. 그의 작품은 이런 감성과 함께 시간의 흐름과 변화까지도 담고 있다.”(큐레이터 이영주).
이와 대비되는 설치작업 ‘A white memory’는 백색 세상이다. 가구뿐 아니라 헌책도 봉인한 뒤 흰색으로 칠해 인위적 화석을 만들어버렸다. 기억을 간직하는 방과 하얗게 기억을 지워버린 방. 집착과 애착을 못 끊는 ‘나’와 이를 거부하고 다 놓아버리려는 ‘나’를 상징하는 작업이다.
극사실회화도, 설치작품도 한결같이 규모와 밀도가 있다. 그중 너비 7m, 높이 3.2m의 ‘내 서랍 속의 자연’은 단연 눈길을 끈다. 300개 서랍이 달린 초대형 서랍장이라 상상하면 될까. 표면에는 그에게 영향을 준 1000권의 책 이미지가 세필로 그려져 있고 서랍마다 관련 이미지가 담겨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내 마음속 서랍을 만들어 기억을 담아두자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내재된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 오래된 물건을 보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사람들도 자기 안의 것을 발견하면 좋겠다.” 관람객들은 작가의 내밀한 세계를 담은 서랍을 열어보면서 ‘내 마음의 서랍’을 떠올리게 된다.
대량생산의 시대, 새것을 숭배하는 세상이라지만 현대 미술에서 시간의 흔적이 각인된 물건은 구박 덩어리가 아니라 광채를 발한다. 낡은 것에서 새로움을 길어 올리는 창의적인 작가들 덕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이 켜켜이 배어 있는 사물을 소재로 활용해 시간의 힘,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한다.
6월 1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전도 낡고 오래된 것들의 매혹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개발과 산업화로 옛 건축물의 문짝과 가구 등이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작가. 세월의 더께가 묻은 오래된 가구와 도자기를 변형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묻는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지만, 과연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그리고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새로운 것은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오브제가 오래된 것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이 될 수 있을까?”
‘Fairytale-chairs’는 중국 청(淸)대 의자 100개를 나란히 배열한 작업.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나무의자는 우리에게 어서 와서 편히 쉬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허리가 아프니까/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그래도 큰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이정록의 ‘의자’)
이 의자들은 2007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 선보여 사람들에게 휴식의 자리가 돼주었다. 당시 작가는 1001명의 중국인을 현지에 초청해 여행하게 하고 이를 ‘동화’ 프로젝트로 펼쳐 주목받았다. 그때 넓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의자 중 일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사람들이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해대면 왠지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라든지 시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보는 사람 마음대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선보이는 작업들이 때론 낯설지만 우리의 사유를 확장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이유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