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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세상]섞이며 깨달으며…生에 두 번은 없군요

입력 | 2008-04-01 02:53:00


《‘슬픔이란 이름의 새를 아시는지

그 새의 보이지 않는 갈퀴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그 생의 투명한, 그러나 절대로 녹지 않는

갈퀴에 머리가 콱 잡혀서

나는 문설주에 고개를 기대고 서서 말하네

잘 가거라 항구를 떠난 잠수함아

여기 절벽 위에 서 있는 나를 잊지는 말아라’

(김혜순의 ‘날마다의 장례’)》

아름다우면서도 으스스하다. 유리 진열장 안에 나란히 누운 박제된 새들. 분홍, 노랑, 하늘색 털실로 짠 옷을 입고 있다.

차갑게 굳은 새, 따스하고 부드러운 털옷. 그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는 이미지 속에 고통과 불안, 삶과 죽음이 녹아 있다. 6월 15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프랑스의 여성 설치작가 아네트 메사제(65)의 ‘기숙생들’이다. 지난해 열린 퐁피두센터의 회고전을 바탕으로 기획된 이 전시에서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카지노’ 등 60여 점과 만날 수 있다.

헝겊인형과 박제, 자수와 털 뭉치, 자질구레한 오브제를 활용하고 회화 사진 조각 드로잉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 소소한 일상과 추억에서 건져 올린 그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한편으로 보편적이다. 여성의 눈으로 내면의 혼란과 모순을 짚어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무의미, 이면, 그로테스크, 어릿광대짓, 그리고 영웅주의와 반대되는 모든 것을 소재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연 삶에 의미란 것이 존재했던가?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내 안의 타자를 찾기 위함이다.”

이처럼 진지한 주제를 ‘놀이’와 결합시킨 점도 흥미롭다. 전시장을 돌아보면 메사제가 좋아한다는 ‘가위손’의 영화감독 팀 버튼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하다. 작가 역시 엽기적인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마법사 같다. 절단된 신체와 인형이 어우러진 공간은 때론 섬뜩하게 때론 유쾌하게 다가온다. 삶이 언제나 그렇듯, 사랑스럽고 끔찍한 것들의 융합, 환상과 현실 등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메사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의 내밀한 기억을 탐색한다면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의 개관 20주년 기념 ‘Sensitive systems’전에 나온 로만 오팔카(77)의 작품은 한 남자의 실존과 시간에 대한 우직한 기록을 보여준다. 폴란드 태생 프랑스 작가 오팔카의 평생 프로젝트는 캔버스에 깨알 같은 숫자를 써나가는 것. 196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작 ‘Detail’은 캔버스, 작가의 얼굴사진, 녹음테이프 등으로 구성된다. 작업 과정은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단순하다. 가느다란 붓에 흰색 물감을 묻혀 같은 규격의 캔버스(196×135cm)에 1부터 시작해 무한에 이르는 숫자를 쓴다. 이를 소리 내 읽어 녹음하고 작품이 완성되면 자기 사진을 찍는다.

처음엔 검은 캔버스에서 출발했지만 매번 약 1%씩 화폭을 밝게 만들어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드러낸다. 마치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해 가듯 캔버스들은 하얗게 빛이 바래 간다. 서울에 온 작품은 회백색 화면에 400만대 숫자들이 채워져 있다. ‘언젠가는 흰색 위에 흰색을 그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오팔카의 작품은 작가의 존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실존의 자각이란 점에서 같은 폴란드 출신 심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와 뿌리가 닿아 있다.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각기 고유하면서도 조금씩 닮은 ‘우리 앞의 생’을 너그럽게 감싸 안는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서로 다를지라도….’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