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즐기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하는 골프’ ‘보는 골프’ ‘읽는 골프’가 그것이다. 골프를 직접 하면서 느끼는 재미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 정상급 프로골퍼들의 경기를 현장에서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미국 PGA나 LPGA 대회는 물론이고 국내 골프대회에도 비싼 입장료 내고 갤러리(골프 관중)가 몰려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 골프장에서 그제 끝난 LPGA 투어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은 한국 골프 팬들의 수준을 보여 준 실망스러운 대회였다. 악천후로 좋지 않은 그린 상태와 강풍 때문에 최종 3라운드가 취소되자 클럽하우스 앞에 몰려든 갤러리는 시위대를 방불케 했다. 물병이 날아가고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팬 서비스를 위해 사인을 하러 나온 외국 선수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미국 선수는 “너무 무서워 사인을 못하겠다”며 클럽하우스 안으로 몸을 피하기도 했다.
▷악천후로 골프대회가 단축되는 사례는 흔히 있다. LPGA의 경우 2라운드 36홀로 대회가 끝난 경우는 1963년 이후 16번이나 된다. 하지만 갤러리가 이번처럼 집단 항의한 예는 없었다. 하긴 평소 국내 골프대회에서 일부 갤러리가 보여 준 ‘불량 매너’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선수가 티샷이나 퍼팅을 할 때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고 휴대전화 벨이 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린에서 선수들의 퍼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다음 홀로 이동하느라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좋은 경기를 보러 전국에서 경주까지 온 골프 팬들로서는 경기 취소로 실망감이 무척 컸을 것이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항의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김미현 선수의 말처럼 경기 취소는 선수나 주최 측의 잘못도, 코스 탓도 아니었다. 그저 ‘날씨 운’이 나빴을 뿐이다. 최경주 선수가 미국 PGA 톱 10에 들어가고 한국 낭자 30여 명이 LPGA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한국 갤러리의 매너가 초보자 수준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