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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인철]직선 총장도 개탄하는 총장선거

입력 | 2007-10-23 03:03:00


2002년 7월 5일 하계 대학총장 세미나가 열린 제주는 대형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다. 당장 제주를 떠나지 않으면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돼 며칠간 발이 묶일지도 모른다는 기상특보에 총장들은 비행기표를 구하려고 비상이 걸렸다.

다음 날 발견한 재미있는 현상. 사립대 총장, 특히 ‘오너’ 총장들은 어떻게 표를 구했는지 대부분 사라진 반면 국립대 총장들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국립대 총장 중에는 “핑계 김에 며칠 쉬겠다”거나 “아내와 우중(雨中) 골프를 즐겼다”고 자랑하는 경우도 있어 대조적이었다.

국립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총장이 요즘 국회 주변에서 화제라고 한다. 경상대 직선 총장을 지내고 9월 1일 첫 법인화 국립대 이사회에서 총장에 선임됐는데 학교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려고 여의도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것. 지금까진 이런 총장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 총장은 “교수가 아닌 이사회가 뽑은 총장이 되니까 책임감이 더 생겨 예전처럼 앉아 있을 수가 없다”며 “직선제는 총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어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역시 국립대 직선 총장을 지낸 A 씨는 임기 4년 동안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교수마다 서로 공을 세웠다고 보직을 요구하고 직원들은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아우성이더군요. 교수들은 편이 갈려 얼굴도 안 보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요구에 시달리다 보니 소신 있게 일을 할 수가 없더군요.”

고려중앙학원 이사회가 고려대 총장선거에서 부적격 후보를 가려내는 네거티브 방식의 전체교수 투표를 없애기로 한 것을 계기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총장선거 때문에 파벌 조성, 보직 나눠먹기 등 갖가지 부작용으로 상아탑마저 정치판으로 변하고 있다는 자성 때문이다. 최소한 출마 2년 전부터 동료 교수들에게 밥 사고 술 사면서 선거운동을 하느라 학문연구는 뒷전이고 억대의 돈을 들이는 것도 예사다. 어떤 총장은 과일선물을 가락동시장에서 차떼기로 산 경우도 있다.

외국 대학들도 이럴까. 40년간 하버드대를 이끌면서 오늘날 세계적 대학의 기틀을 다진 찰스 엘리엇 총장을 비롯해 미국 대학 총장은 20∼30년씩 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총장의 평균 임기는 13.7년이지만 교수가 총장을 직접 뽑는 경우는 없다. 총장추천위원회가 학문적 성과와 경영능력을 철저히 검증해 유능한 총장을 교내외에서 영입한다.

물론 장수 총장에 대한 비판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시 오래 하면 조직 정체, 인맥 형성, 아이디어 고갈 등으로 문제점이 생기기 때문에 임기는 두 번 정도가 적당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의 총장 직선제는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1988년 처음 도입된 이후 지금은 모든 국공립대가 채택하고 있고 상당수 사립대도 직선제 또는 직·간선제를 가미한 제도를 갖고 있다. 직선제가 대학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고 과거에 안주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유능하다면 대학을 바꿔 가며 총장을 하고, 외국인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총장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인철 교육생활부장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