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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베란다에선 ‘웰빙’이 자라요

입력 | 2007-10-10 03:02:00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아파트 베란다를 활용해 도심에서 무공해 채소를 기르는 가정이 늘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한 아파트의 25층에 사는 권춘희 씨가 자녀들과 함께 베란다에서 채소를 돌보고 있다. 우정열 기자


“아파트 1층 베란다에서도 채소를 키워봤는데 볕이 잘 들지 않아 잘 자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남향 아파트 25층으로 이사했더니 그 후로는 베란다에 뭘 심어도 잘 자라요.”

권춘희(43·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씨는 상추, 쑥갓, 열무, 당근 등을 심어 놓은 아파트 베란다 화단에서 웃자란 채소를 솎아내느라 열심이다. 아들 동현(15)과 딸 종영(13)이 작은 채반을 들고 권 씨의 일손을 거든다.

권 씨는 4년 전 취미로 베란다에서 채소를 가꾸기 시작했다. 씨앗이 녹색 싹이 돼서 흙을 뚫고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무공해 채소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이다. 권 씨는 진딧물이 생기면 일일이 손으로 잡아 없앤다.

“비록 벌레가 갉아 먹은 구멍이 있더라도 집에서 기른 채소는 수확한 지 최소 2∼3일은 지난 마트 채소보다 아삭거리고 맛도 좋죠.”

권 씨는 베란다에서 야채를 키웠더니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도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예전엔 흙 만지기를 싫어하던 동현이가 이제는 물 주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일꾼이 됐다. 동현이는 “싹이 트는 것도 신기하지만 가장 재미있고 신날 때는 열매를 딸 때”라고 말한다.

권 씨처럼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만의 미니 텃밭으로 가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삭막한 아파트 숲에서 녹색 공간을 갖는 것도 매력이지만 신선한 무공해 채소의 맛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베란다에서 무공해 야채를 기를 때 유용한 정보를 알아봤다.

창 자주 열어 햇빛-바람 쏘이고 화분보단 사과 상자를

베란다는 일반 텃밭에 비해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베란다 유리에 색이 들어가 있으면 식물이 받을 수 있는 햇빛의 양이 더 줄어든다.

따라서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려면 봄부터 가을까지는 베란다 창을 자주 열어 식물이 햇빛과 바람을 자주 보게 해야 한다.

아파트 저층이라든지 앞 동 건물에 가려서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 중에는 아예 채소 키우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낮 시간에 화분 위 60∼70cm 높이에 백열등을 켜두면 햇빛을 보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서명훈 연구원은 “밤까지 불이 켜져 있으면 식물의 생장리듬이 흐트러질 수 있으므로 어두워지면 불을 끄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작은 화분이라면 물은 하루에 한 번씩 흙이 흠뻑 젖을 정도로 충분히 주는 것이 좋다. 작은 화분 대신 흙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사과 상자나 스티로폼 과일 상자를 이용하면 물도 매일 줄 필요가 없고 채소도 잘 자란다.

상추 시금치 등 잎채소는 햇빛 적어도 잘 자라

전문가들은 상추 시금치 등 잎채소는 특별한 재배 기술이 없어도 잘 자라는 반면 토마토 고추 등 열매채소와 당근 같은 뿌리채소는 화분에서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조량과 통풍 상의 한계 때문에 베란다에서는 햇빛이 적어도 잘 자라는 잎채소를 기르는 것이 무난하다.

남향 베란다에서는 상추, 열무, 쑥갓, 파 등이 적절하다. 동향이나 서향 베란다라면 미나리, 부추, 시금치 등을 재배할 수 있다.

다양한 잎채소를 키워 본 유정화(52·대전 유성구 전민동) 씨는 “낮은 온도에서도 잘 자라는 시금치는 남향 베란다에서 키우면 겨울에도 잘 자란다”면서 “올가을에도 시금치 씨를 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콩나물이나 숙주처럼 싹을 기르는 채소는 계절에 상관없이 재배할 수 있다. 최근 참살이(웰빙) 바람을 타고 유행하고 있는 무순 메밀순 등 새싹채소를 화분에서 기르는 가정도 많다. 새싹채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4만 원대에 살 수 있는 씨앗이 포함된 재배기를 이용하면 더욱 기르기 쉽다.

병충해는 농약 대신 고추 마늘로도 막을 수 있어

베란다에서 야채를 키울 때 가장 번거로운 부분은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대처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곧바로 밥상에 오를 야채에 화학농약을 치자니 꺼림칙하고 화분용 농약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고추, 마늘, 우유처럼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연재료로 만든 농약을 사용하면 효과 만점이다.

매운 붉은 고추 100g을 물 1L에 넣어 20분 이상 끓여 식힌 다음 10배 정도의 물에 희석해 분무기로 뿌려 주면 매운맛을 내는 캅사이신 성분이 살균 살충 효과를 낸다.

물 1L에 다진 마늘 50g을 넣고 끓인 후 50배 정도의 물에 희석해 뿌려도 매운맛을 내는 알리신 성분 덕분에 고추 농약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 연구원은 “고추나 마늘에는 해충이 싫어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해충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유도 훌륭한 천연농약이 될 수 있다. 진드기가 야채 잎을 갉아 먹을 때에는 우유를 해충이 있는 곳에 뿌려 주면 우유 성분이 해충의 호흡기관을 막아 질식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