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시집 부문 10위권 내에는 김선우(36) 씨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와 김경주(32) 씨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가 있다. ‘내 몸속에…’는 출간 두 달 만에 4000부 이상 나가면서 4쇄에 들어갔다. ‘나는 이 세상에…’는 지난해 7월 출간된 뒤 1만여 부가 팔리면서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10위권 내 다른 시집들과 비교하면 이들 시집은 이채롭다. 10위권 내 시집 7권이 여러 시인들의 기존 시를 가려 뽑은 컴필레이션 시집. ‘팔리는 시집은 컴필레이션 시집 아니면 스타 시인의 시집’이라는 얘기가 정설이 된 지 오래다. 김선우 김경주 씨는 평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시인이지만 대중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게 사실. 그런데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조용하게 인기 몰이를 하는 젊은 시인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나온 이병률(40) 씨의 ‘바람의 사생활’은 8000부 이상 나가면서 5쇄를 찍었다. 신용목(33) 씨는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가 4쇄를 찍으면서 광고 문구로까지 인용됐으며 새 시집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는 출간 한 달 만에 2000부가 나갔다.
문학이 경쟁해야 할 볼거리 읽을거리가 허다한 요즘 상황에선 소설집도 1만 부 나가기 어렵다. 중쇄를 하기 어려운 시집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에서 젊은 시인들의 이 같은 선전은 놀랍다. 조용하지만 강한 이들의 흥행 코드는 뭘까?
평론가 신형철 씨는 “플러스알파”라고 설명한다. 꾸준하게 인기를 모으는 젊은 시인들의 경우 “시에 대한 일반적인 요구 사항을 충실하게 갖추면서 플러스알파를 더한 게 공통점”이라는 것. “시장에서 호응이 있다는 것은 독자층이 한정돼 있지 않고 범위가 넓다는 의미인데 젊은 시인들의 시집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살펴보면 실제로 세대를 망라한다. 독자들에게 고루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좋은 시의 미덕이 있다는 얘기다.” 가령 김선우 씨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 모두에게 울림을 주는 여성성을, 김경주 씨는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격렬한 의지를 시에 담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상투성을 벗어나는 실험을 시도하기 때문에 ‘익숙한 것+새로운 것’을 버무린다는 것이다.
평론가 권혁웅 씨도 “인기 있는 젊은 시인들의 작품은 독자들이 낯설어 하지 않는 서정적인 느낌을 갖추되 저마다 개별적으로 변용해서 개성과 신선함을 끌어낸다”고 분석했다.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콘텐츠를 갖춘 한편 그 기대를 신선하게 배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용목 씨는 전통적인 서정성을 잘 구사하면서도 확고한 인식의 틀을 보여 주고 이병률 씨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 주면서도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 넣는다. 권혁웅 씨는 “스타 파워에 기대지 않고 작품으로 읽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는 최근의 경향은 고무적”이라면서, “독자와 멀어졌다고 여겨졌던 시 장르가 최근 이렇게 호응을 얻는 것은 우리 시단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