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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의료봉사 공로로 인촌상 받은 장순명 영남종합병원 외과과장

입력 | 2007-09-11 03:01:00

올해 인촌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영남종합병원 장순명 외과 과장. 평생을 의료봉사에 헌신한 그는 “세계 어느 곳이든 내 손길이 필요하다면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강정훈 기자


“봉사는 무슨…. 내가 좋아 하는 일인데요.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서로를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9일 오후 경남 밀양시 내이동 영남종합병원 1층 외과 과장실.

평생 의료봉사를 한 공로로 올해 인촌상(공공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장순명(65) 과장은 올해 초 이 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의 책상, 의자 등 집기들은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그의 모습처럼 소박했다.

장 과장이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8세 때. 북한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월남해 부산에서 자란 장 과장은 의사였던 부친이 사준 책을 통해 슈바이처 박사를 처음 알게 됐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며 신부가 되는 꿈을 꾼 적도 있지만 슈바이처의 삶을 알고 난 뒤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

장 과장은 “결국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적극적으로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부친은 “적십자정신이 충만하지 않으면 의사의 길을 가기 무척 힘들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의사가 되려는 그의 결심을 믿고, 격려해 줬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그는 친구의 소개로 이화여대를 졸업한 부인 이영윤(60) 씨와 결혼했다. ‘잘나가는’ 의사로서의 예정된 삶이었다.

30대 초반 1975년 정부 의료사절단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의 우간다에 파견된 것이 그의 삶의 궤도를 바꿔 놓았다. 장 과장은 “당시 우간다로 떠나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집사람과 별다른 의견 충돌이 없었다”면서 “평소 아프리카에 대해서 자주 얘기를 해 집사람도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인 이 씨, 네 살이던 첫째 딸 진희(35) 씨와 함께 우간다로 간 그는 우간다 정부가 주는 월급 200달러,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20만 원을 받으며 현지 리라(Lira)병원에서 근무했다.

2년 뒤 귀국한 이후 제주 나사로병원, 현대 아산병원 등에서 13년여 동안 의사 생활을 했다. 대부분의 동료가 독립해 개업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언젠가는 더 많은 봉사를 위해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머물렀다.

장 과장은 1994년 충북 음성군의 꽃동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활하다가 나이가 더 들면 (봉사의 길을) 못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그는 기력이 있을 때 힘든 이웃을 위해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오웅진 신부의 승낙을 받았다.

50대 중반의 의사였던 그는 꽃동네에 홀로 들어가 ‘공중보건의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10년 7개월을 보냈다. 서울에 남은 부인, 네 아이와는 긴 시간을 떨어져 살아야 했다.

꽃동네 생활을 끝내고 집에서 재충전을 하고 있던 그에게 셋째 딸 귀범(28) 씨는 ‘국경 없는 의사회’를 소개해 줬다. 귀범 씨는 의대를 졸업해 현재 미국에서 소아과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다.

장 과장은 딸의 얘기를 ‘새로운 봉사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일본에 가서 교육을 받은 그는 2004년 12월 말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로 떠났다.

4주일의 단기 파견이었지만 그는 자원해 두 달 넘게 근무했다.

라이베리아의 수도인 몬로비아에 있는 응급환자 전담 ‘맘바 포인트 병원’에서 외과 수술을 하고 환자를 돌보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제왕절개와 탈장수술 등 두 달 동안 무려 200차례 수술을 집도했다. 이순(耳順)을 넘긴 그에게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오후 5시 이후 환자가 몰려 매일 밤 수술이 이어졌다. 보조 인력 및 설비 등이 좋지 않아 더욱 애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두 달간 의료봉사를 마치고 귀국해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현지 주민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장 과장은 “그곳 주민과 아이들 병을 고쳐 주는 것도 보람이지만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또다시 자원해 프란체스코 수녀원이 잠비아 현지에 지은 ‘루위(은총이라는 뜻) 병원’에서 4개월간 무보수로 근무했다.

장 과장은 “전기와 물, 치안 등이 열악한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은 죽기를 각오한 인간 한계의 체험이었지만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잘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귀국한 그는 올해 2월 영남종합병원에 ‘취직’했다. 의료봉사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안 살림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장 과장은 이 병원에서 1년 정도 월급을 받아 살림에 보탠 뒤 여비를 만들어 마지막 ‘봉사의 길’을 떠날 생각이다.

그는 “배운 것이 의술이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것”이라며 “세계 어느 곳이든 내 손길이 필요하다면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순명 과장:

△1942년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 출생 △1962년 부산고 졸업 △1968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69∼1975 서울대병원 일반외과, 흉부외과 근무 △1975년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75∼1977년 우간다 리라병원 근무 △1981∼1990 제주 나사로병원, 현대 아산병원 재직 △1994∼2004년 충북 음성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근무 △2002년 제14회 서울시민상 수상 △2004, 2006년 라이베리아, 잠비아 파견 근무

밀양=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