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 충격…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에 연쇄 충격을 준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고객이 망연자실한 채 시세 전광판을 응시하고 있다(왼쪽).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80.19포인트 하락했다. 9일(현지 시간)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전날보다 387.18포인트 급락하자 뉴욕 증권거래소의 한 중개인이 고뇌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AP 연합 뉴스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우려로 세계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미국의 신용 경색 현상이 본격화한 데 이어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까지 타격을 입었다고 발표하자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증시까지 급락해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2001년 9·11테러 이후 처음으로 공조 체제를 갖춰 9일과 10일 무려 2600억 달러(약 247조 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붓는 등 수습에 나선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세계 금융계는 이번 파장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긴장 속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 얼어붙은 세계 금융시장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신용등급이 낮아 주택을 장만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해 만들어졌다.
금리는 신용등급이 높은 프라임 모기지에 비해 3%포인트가량 비싸며 변동금리가 대부분을 차지해 시중금리 상승과 주택 가격 하락에 취약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1조5000억∼2조 달러로 전체 모기지 시장의 13%를 차지한다.
최근 미국의 주택 가격 하락으로 추가 대출이 어려워진 반면 경기 과열 우려로 이자율이 높아지면서 저소득층의 연체율은 2005년 2분기(4∼6월) 10.3%에서 올해 1분기(1∼3월)에는 13.77%까지 상승했다.
모기지 회사의 자금은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과 구조적으로 얽혀 있어 연체율 상승에 따른 충격은 금융계 전체로 번졌다.
모기지 회사는 대출채권을 담보로 대형 투자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은행은 담보로 확보한 대출채권을 기초로 자산담보부증권(CDO) 같은 2차 금융상품을 만들어 헤지펀드나 사모(私募)펀드에 판매한다.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들이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않으면 그 충격파는 ‘모기지 회사-투자은행-헤지펀드 등 투자펀드-연기금과 은행 등 기관투자가’의 순으로 전해져 연쇄적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미국 시장 내에서 머무는 듯하던 위기의 징후는 유럽과 호주로 번지면서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다.
BNP파리바는 9일(현지 시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신용 경색으로 자산유동화가 이뤄지지 않아 여기에 투자한 펀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관련 펀드 3개에 대한 환매와 가치 산정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투자은행인 NIBC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1억8900만 달러(약 1795억5000만 원)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호주 맥쿼리은행의 계열펀드인 포트레스와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 등도 같은 이유로 타격을 입었다고 시인했다.
미국 역시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모기지 업체인 아메리칸홈모기지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 주요국 중앙은행 공조 효과 있을까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긴급 자금을 지원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9일 950억 유로를 공급했는데도 시장 불안이 계속되자 10일 610억 유로를 추가로 풀었다. 미국 FRB도 초단기 자금을 9일과 10일 각각 240억 달러와 190억 달러 공급하는 등 이례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일본은행(1조 엔)과 캐나다은행(14억5000만 캐나다달러)도 대규모 자금을 풀어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이번 사태의 충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은 “각국 중앙은행의 조치로 유동성 자금이 제때 시장에 공급되면 사태가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메리츠증권 심재엽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은행의 부실 우려가 남아 있어 앞으로도 추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앙은행의 긴급 지원으로도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부실 규모가 크다는 점이 확인될 경우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편 신한BNP파리바투자신탁운용은 “BNP파리바가 환매를 일시 중단한 3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 운용 중인 펀드 중 환매가 중단된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상품도 없다”고 밝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주택 마련 자금을 빌려 주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한 펀드와 금융회사가 연쇄적으로 손실을 보면서 신용 경색 우려가 글로벌 금융 위기로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