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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교과서에 숨어있는 논술주제]사랑이 없다면?

입력 | 2007-07-17 02:59:00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어라

[정인보, ‘자모사(자모사)’,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김광균, ‘은수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TIP] 사랑은 내면적이며 근원적이다.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보편적 감정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곁을 떠난 아기를 그리는 아버지의 정, 이는 효(孝)와 자애(慈愛)로 불리는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은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끈이다. 끈의 어느 한쪽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고통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잠시 동안 샤론의 장미는 속삭이는 듯한 빗소리가 들리는 헛간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윽고 지친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일어나서는 깃이불을 몸에 꼭 여몄다. 천천히 구석으로 걸어가서 사나이의 쇠잔한 얼굴을 내려다보고 크게 뜬 겁먹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어 천천히 사나이의 곁에 드러누웠다. 사나이가 느릿느릿 고개를 가로저었다. 샤론의 장미는 깃이불 한쪽을 헤치고 젖가슴을 내놓았다. “먹어야 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몸을 꿈틀거리며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사나이의 머리를 끌어 당겼다. “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녀의 손이 사나이의 머리 뒤로 돌아가 받쳐주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사나이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눈을 들어 헛간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입술은 다물어지고 입가에는 신비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TIP] 1930년 대공황기. 생존을 위한 캘리포니아로의 이주와 가족의 죽음, 고용주들의 횡포와 이에 맞선 저항, 그리고 또 한번의 죽음, 점점 커져가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로자샨(샤론의 장미)의 사산(死産), 그리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노동자, 그를 살리기 위해 젖을 물리는 로자샨의 행동은 꺼져가는 생명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근원적이다.

사랑은 영혼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열정을 활성화시키는 정신적인 힘이다. 이러한 사랑을 통해 인간은 인간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열정이 없거나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없으며, 결국 정신이 황폐화되고 비인간화된다.

[고등학교 ‘시민윤리’ 교과서]

[TIP] 동양에서 사랑은 ‘자애(慈愛)’, ‘효(孝)’와 함께 친구 사이의 우정을 나타내는 ‘믿음(信)’과 형제 간에 아끼는 마음인 ‘제(悌)’ 등으로 불린다. 서양에서는 이타적인 사랑을 ‘아가페(agape)’로, 정신적·인격적 사랑을 ‘필리아(philia)’라 한다. ‘루두스(ludus)’는 아이들이나 편한 사이의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랑을 뜻하는 말이 다양한 까닭은 사랑이 다양한 인격적 교제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을 때 인간의 관계는 인격적인 데서 멀어진다.

전지용 최강학원 통합언어논술 대표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