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독재국가도 미국의 친구로 만들어 줍니다”

입력 | 2007-07-06 03:00:00


“매년 100만 달러(약 9억5000만 원) 안팎의 로비스트 비용만 부담하면 최악의 독재국가도 미국의 친구로 ‘포장’해 줄 수 있다.”

진보 성향의 미국 잡지인 하퍼스 7월호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컨설턴트로 위장한 기자가 워싱턴 유수의 로비 회사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런 제안을 받았다며 워싱턴 정가를 주무르는 로비 회사들의 실태를 파헤치는 기사를 게재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 탄압 국가. 프리덤하우스는 최근 언론 자유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을 195개국 중 191위로 평가했다.

보드카 병에까지 자신의 형상을 새기게 할 정도로 개인숭배를 강요한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심장마비로 숨진 뒤 그의 측근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가 올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투르크메니스탄 컨설턴트로 위장한 켄 실버스타인 하퍼스 워싱턴 지국장은 워싱턴 유명 로비 회사인 APCO와 캐시디 측에 투르크메니스탄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로비를 해 줄 의향이 있는지를 문의했다.

두 회사는 즉각 ‘OK’ 답변을 보내며 프레젠테이션을 제안해 왔다.

전 카자흐스탄 주재 미국 대사 등 고위직을 지낸 APCO 간부들은 프레젠테이션에서 미 의회 인사들의 투르크메니스탄 방문을 제안했다. 이들은 투르크메니스탄 대학이나 연구소가 간접 초청하면 최근 강화된 의회 윤리규정을 피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편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미디어 전략에 대한 충고도 빠지지 않았다. 인터넷 카페를 몇 개 허용하는 등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 준 뒤 미 언론의 관심을 끌게 하면 국가 이미지 개선에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APCO 고위 간부들은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에서 아무도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약간의 변화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투르크메니스탄에 투자한 기업이나 잠재적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미-투르크메니스탄 포럼’을 구성하는 것이 미국 정부에 영향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캐시디 측은 프레젠테이션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론 행정부에까지 구축해 놓은 전방위 인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캐시디 측은 로비 성공 사례로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지 조치를 철폐하고 1995년 당시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킨 것을 꼽았다.

캐시디 관계자는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 막대한 천연자원을 가진 자원부국으로서의 가치를 미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에게 설명하면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르크메니스탄 고위 관료들과 미 의회 지도자들의 회동도 주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PCO가 제시한 로비 비용은 연간 60만 달러, 캐시디 측은 100만∼120만 달러였다.

실버스타인 지국장은 취재 후기에서 “로비 회사들은 프레젠테이션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미 국무부 회의 내용까지 알려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