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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사르코지 경제노선

입력 | 2007-07-04 02:56:00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기업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리버럴(liberal)인가, 정부의 개입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자’인가, 또는 ‘제3의 길 주의자’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의도적인 ‘절충주의자’인가.

많은 경제학자가 그의 경제노선을 정의내리기 주저한다. 그러나 파리 13대학의 도니미크 플리옹 교수는 그를 ‘우파의 그람시주의자’로 규정하고 나섰다고 르몽드가 2일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그람시는 ‘정치권력의 장악과 유지에는 이념 혹은 이념투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꿔 말하면 ‘이념은 결국 권력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 따라 의회에 제출한 상속세 폐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이나 초과노동수당 면세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보면 그는 ‘리버럴’이다. 그러나 국민의 구매력 제고를 위해 세금을 지출하겠다느니, 국가가 나서 산업정책을 세우겠다느니 하는 발언에선 ‘케인스주의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한편 그가 유럽연합(EU) 헌법에서 ‘자유롭고 왜곡되지 않은 경쟁’이란 말을 삭제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EU 집행부가 회원국의 이해를 무시하고 자유경쟁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반(反)리버럴에 접근해 있다.

플리옹 교수는 “기본적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무슨무슨 ‘주의’를 떠드는 지식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념이 정치권력에 봉사하는 것이지 정치권력이 이념에 봉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는 우파의 그람시주의자”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수미일관한 경제정책을 제시해 본 일이 없다. 이 점에서 자유시장과 경쟁을 떠받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과 같은 신자유주의자와는 다르다.

또 ‘제3의 길 주의자’로서 시장과 높은 수준의 복지를 실용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고 믿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도 분명 다른 모습이다.

파리도핀대의 크리스티앙 생테티엔 교수도 “그는 정치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에 따라 경제 노선을 택한다. 즉 정치를 경제의 우위에 두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플리옹 교수가 보기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치인이다.

프랑스 대기업은 대내적으로는 부자에 대한 세금 경감과 노동시장의 규제 철폐를 요구하면서 자유 경쟁을 외치지만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제너럴일렉트릭(GE)으로 상징되는 세계화 물결 앞에서는 국가에 ‘국내 기업 보호’를 요구한다.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다 보니 사르코지 대통령은 어떤 때는 ‘리버럴’의 모습을 보이고 어떤 때는 ‘보호주의’의 화신이 된다는 것.

그의 성장 배경도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프랑스 유력 정치인과 지식인이 주로 나오는 그랑제콜 출신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수성가해 파리 근교 부유한 도시의 시장을 지내고 많은 유력 경제인을 친구로 둬 ‘경제를 머리가 아니라 본능으로 아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자 ‘문화적 헤게모니’ 강조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이탈리아 공산당의 창립자이자 정치사상가.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수감됐을 때 쓴 ‘옥중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력 외에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교육자와 언론인을 전통적 지식인과 구별해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마키아벨리의 영향을 받은 그는 ‘중립적 지식은 없으며 지식이란 권력 혹은 대항(對抗)권력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