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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제라르 뱅데]시련 속에 맺은 결실 ‘EU조약’

입력 | 2007-06-29 03:01:00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이라는 공동체는 진화를 거듭해 왔다.

처음 경제공동체를 창설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끊임없이 경계선을 확장했다. 특히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 중부, 동부 유럽 국가들의 통합에 따라 유럽연합(EU) 회원국이 27개로 늘었다.

덩치가 커졌다는 것은 공동체가 발휘하는 힘이 커졌다는 뜻이다. 반면 6개국일 때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EU는 1957년 체결된 로마 조약을 계속 수정해 왔다. 그러나 더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1996년에는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국가 간 회의가 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구심력이 떨어졌다. 2000년에는 니스 조약이 체결됐다. 이를 통해 회원국들은 의욕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들을 마련했다.

2004년에는 27개 EU 회원국이 공동 헌법을 갖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문제를 한꺼번에 일축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으로 보였다. 그런데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반대해 EU 헌법 제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미 물 건너 간 상황이라 나머지 국가들은 비준 절차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27개국 가운데 헌법을 비준한 나라는 18개국에 그쳤다.

이제 EU의 당면 목표는 차기 유럽의회 선거인 2009년까지 제도 개혁을 완성하는 일이다. 2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새로운 조약을 논의하는 정부 간 회의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좌초된 헌법을 대신할 개정 조약 논의 작업이 다음 달 23일 시작되며 연말까지는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진 것은 정치적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 유럽에 새로운 지도자가 속속 등장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개정 조약을 만들기로 합의하기까지 협상은 쉽지 않았다. 영국과 폴란드의 반대가 거셌다. 특히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략으로 생긴 앙금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중재로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면 이번 정상회의도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을지 모를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추진하기로 합의된 개정 조약의 윤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년 6개월 임기의 대통령직을 신설한다. 수사, 사법 영역의 공조를 확대한다. 관세, 통상, 경쟁, 통화 분야에서는 EU가 배타적 권한을 갖고 사회 정책, 국내 시장, 에너지 문제 등은 각 국가가 고유 권한을 갖는다. 이중다수결제를 도입하되 폴란드의 요청에 따라 2014년으로 시행을 연기한다. EU의 외교, 안보, 사법 정책은 전 회원국이 골고루 참여하도록 한다. 2년 전 프랑스, 네덜란드의 국민투표 때 논란이 됐던 문제들은 개정 조약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새로운 조약을 ‘헌법’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로써 EU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제도상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민, 에너지, 테러 등 머리를 맞대고 공동 대처를 모색해야 하는 문제가 아직 수없이 남아 있다.

시련과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시련과 도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함께 해결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