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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별]연극배우 김지숙의 빛 ‘피아니스트’이희아

입력 | 2007-05-26 03:07:00

연극배우 김지숙 씨가 ‘내 마음속의 별’로 선정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김 씨는 이 씨를 “장애를 딛고 자신의 꿈을 이룬 우리 시대의 진정한 별”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별은 빛이다. 밤하늘의 자욱한 어둠 속에서도 꿈과 열정을 빛내는 별은 지상의 사람들에게 고요한 감동을 전한다.

별은 길이다. 과학의 도구가 미약했던 시절, 칠흑 같은 캄캄한 밤에 대양에서 뱃사람의 갈 길을 안내한 것은 남십자성과 북극성이었다.

어둠 속에 갇힌 나에게 빛과 길이 돼 주었던 별.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22) 씨는 내 마음 속의 진정한 별이다.

○ 나의 어둠을 밝힌 빛, 희아

2002년 연극 ‘뜨거운 바다’와 ‘로제’의 순회공연을 마친 뒤, 나는 어둠으로 빠져들었다. 어느새 50을 바라보는 나이의 여배우가 됐다고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는 번뇌와 갈등이 옭매어 온 것이다. 더는 젊고 매력적인 역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 스스로를 집에 가두고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의 커튼을 굳게 닫았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며 나는 그늘 속에 살았고 집안은 음습한 폐허로 변했다. 연체료가 밀린 각종 고지서는 먼지와 함께 여기저기에 쌓였고 마음은 탈출구를 절실히 찾고 있었다. 무기력한 표정으로 절에 들어갈까, 아무 남자나 만나서 결혼을 해 버릴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사춘기 시절 서른아홉에 죽겠다던 철없는 계획을 떠올리며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오랜 방황과 어둠에서 벗어난 계기는 네 손가락만으로 베토벤의 소나타 ‘월광’을 연주하는 희아를 TV에서 본 뒤였다. 열 손가락으로 쳐도 힘든 그 곡을, 그는 손의 기교 대신 영혼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지치거나 힘든 기색조차 없이 표정은 한없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선천성사지기형 1급 장애로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네 개뿐이고 무릎 아래 다리도 없는 희아. 연극에 비유한다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는 장애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이겨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뤘다. 나태와 나약에 빠져 허덕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고작 나이 드는 서글픔과 최고를 향한 욕심으로 괴로워한 나는 얼마나 약하고 모자란 존재인가.

○ 감동과 환희로 가슴 떨렸던 그녀의 연주

희아는 이제 스물두 살이다. 아직 세상을 배우고 꿈을 키워 나갈 시기이지만, 그는 손가락 네 개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꿈에 도전했고 성취했다. 국립한국재활복지대 멀티미디어학과에 재학하며 학생으로서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CNN을 비롯한 세계 여러 언론에 소개돼 주목받았고 유명한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자신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헬렌 켈러의 설리번 선생처럼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조미경 강사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희아가 험난한 세상에서 혼자 남아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도록 때로는 감싸주고 때로는 엄하게 다그친 어머니 우갑순 씨의 헌신적인 교육도 나를 감동시켰다. 희아의 어머니는 유방암 투병 환자이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장애가 있는 딸에게 희망을 줬다.

그를 알게 된 뒤, 평소 잘 쓰지도 않던 인터넷으로 희아의 동영상을 계속 찾아봤다. 연주를 들을 때마다 감동과 환희로 가슴이 떨렸다. 숫자와 물리적 감각이 거의 없어서 모든 곡을 통째로 외워서 친다는 얘기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잃어버렸던 젊은 날의 열정과 도전이 몸속 세포에서 하나씩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음악이 민간요법처럼 지친 내 영혼에 힘을 북돋은 것이다.

○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 시대의 별

재일교포 친구가 희아의 일본 공연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비록 만난 적은 없지만 그는 내게 더 가까운 존재로 다가왔다. 친구에게 희아가 무대 밖에서 어떤 소녀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내가 팬이고 존경한다는 얘기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희아는 내게 빛과 길이 돼 주었다. 창문의 커튼을 활짝 열고 연극배우로서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올해 2월 연극 ‘졸업’으로 연기를 재개하고 7월 공연할 ‘뜨거운 바다’의 연출을 맡아 바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에너지의 원천은 그의 피아노 연주다. 기회가 된다면 내 작품에 그를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돼 고맙다는 인사를 했으면 한다.

너무 가볍고 쉽고 성급한 요즘.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주변에 많다. 진정을 다해서 치열하게 삶을 살고 고난과 부닥쳐 봤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아울러 나 자신에게도 되묻는다.

우리가 존경해야 할 사람은 1등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고 뛰어넘은 사람이다. 스타는 그런 존재다. 스스로 고통과 한계를 딛고 일어선 느낌을 경험한 사람만이 남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성숙한 사람으로서 귀감을 주는 희아는 진정한 이 시대의 별이다.

■ “너무나 감사… 연극 보러 가도 되죠”

이희아 씨도 연극배우 김지숙 씨에 대해 “만난 적은 없지만 잘 안다”고 했다. 김 씨가 말한 것처럼 일본 공연 당시 통역을 한 재일교포 고창미 씨를 통해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김 씨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거나 새로 연극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료를 찾아본 적도 있다.

이 씨는 김 씨의 연극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꼭 찾아가서 보겠다”고 했다. 그는 또 유명한 연극배우가 자신을 ‘내 마음속의 별’로 선정한 것을 “감사하다”며 기뻐했다. 이 씨는 “평소 연극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 씨가 여배우로서 좌절에 빠졌던 것처럼 이 씨도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다른 장애아학교에 입학원서까지 내면서 피아노를 일부러 멀리 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쳐서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가 마음을 바꾸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계속 키울 수 있었던 계기는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얘기를 담은 동화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고정욱 저)을 읽고 보내준 독후감을 읽은 뒤 였다. 이 씨는 “나를 응원하고 아끼는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나이는 어렸지만 한계를 이겨 보겠다는 오기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내 연주를 보고 듣고 싶어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1999년 자신을 소개하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 뒤 방송 등 여러 매체와 음악계가 관심을 보이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헬렌 켈러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앞으로 피아노 연주를 통해서 청중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꿈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