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구기터널 앞 삼성출판박물관에서는 매주 수요일 문화계 인사들을 초청한 특별강좌가 열린다. ‘강호의 고수’들에 대한 인물평으로 유명한 조용헌 씨가 이 박물관 관장의 이름을 따서 ‘김종규 살롱’이라고 소개한 이곳에서 18일 더욱 특별한 토론회가 열렸다.
동양철학의 석학인 김충렬(75) 고려대 명예교수와 경제학의 원로인 조순(78) 서울대 명예교수의 경제철학토론회였다. 두 사람은 강원 원주와 강릉시 출신으로 태백산맥의 동서 양 지역이 배출한 대표적 석학으로 꼽힌다. 이들의 토론이 가능했던 것은 ‘맹자’에서 경제학 이론을 끌어낸 김 교수와 한문 저술의 국역사업을 진행 중인 민족문화추진회 회장을 맡을 만큼 한학에 뛰어난 조 교수의 학제적 관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토론회는 17세기 이후 서양이 동양을 앞서게 된 원인과 그 한계에 대한 동양철학자의 본질적 통찰과 경제학자의 실용적 해석이 맞부딪치면서도 묘한 화음을 빚어 냈다.
그 화음 중 하나는 중국인은 실사구시 사상에 기초한 뛰어난 현실적응력을 보이는 반면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교조적이라는 부분이었다. 김 교수는 “좌우의 이념대립은 서구에서 시작됐는데 그 충돌이 가장 심하게 발생한 곳은 한반도”라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한국인들은 배가 침몰할 상황에서도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지기에 급급하다”며 “원인이 뭐든 우선은 침몰 위기에서 배를 구해 내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이 야기한 위기 상황에서 현재의 위기가 누구 때문에 발생했느냐는 책임 따지기에 급급한 한국의 정치인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토론이 진행됨에 따라 정치의 무능에 대한 탄식은 더욱 깊어졌다. 김 교수는 대학 교육을 망치고 인문학의 위기를 낳은 원인을 국가 리더십의 근시안적 행태에서 찾았다. 조 교수는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희생되고, 시장경제는 양극화로 귀결될 것”이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함정을 직시하고 대안을 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아쉽다”고 말했다.
‘실용적 중국과 교조적 한국’의 이미지를 무너뜨릴 정치적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는 한 21세기 한국은 다시 중국의 예속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북핵 위기야말로 그 실험대가 아닐까.
권재현 문화부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