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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X파일]‘정 주고 내가 우네’… 실험동물에 바치는 哀歌

입력 | 2006-09-29 03:01:00


‘오늘이 너희들과 이별하는 날이구나. 반 년간 매일 만나며 정이 들었는데. 또 며칠 동안은 너희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겠지. 오늘 이별은 몇 번째인가.’

오늘은 장장 6개월간 진행된 실험의 마지막인 ‘부검(剖檢)’하는 날.

곧 부검대에 오를 녀석들은 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를 비비며 흔쾌히 안긴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꼬리를 치며 반길 정도로 순진하다는 비글은 공교롭게도 실험동물로 가장 많이 이용된다.

부검 시작 전. ‘내일부터는 이 녀석을 볼 수 없겠지’하며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스린다. 그렇게 시작한 부검은 한나절을 꼬박 넘기고, 아침 녘 시끄러웠던 실험실은 저녁 녘이면 휑한 기운에 휩싸인다.

그날 저녁 연구자들은 조촐한 술자리에 모였다. 연차가 꽤 되는 선배도, 이제 막 이런 생활을 시작한 후배도 말이 없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면 여기저기서 푸념이 쏟아진다.

“나 이 일 못하겠어. 조만간에 다르게 먹고 살 일을 찾을 거야.”

배울 만큼 배운 전문가가 이런 일을 한다는 사실에 어느새 자신이 한심해진다. 이런 속내를 모르는지 연구자들을 ‘냉혈한’으로 모는 이들이 못내 야속하기만 하다.

‘필요악’이라고 했던가. 난치병 치료에 사용될 신약이나 사람이 사용할 물질을 개발하려면 반드시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전임상’이라는 동물실험을 거쳐야 한다.

생명을 구하려는 목적과 동물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연구자들은 최선책을 찾는다. 희생되는 동물을 최소로 줄이고, 한정된 조건에서 최대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들었던 동물과의 관계도 마음 속에서 차분히 정리하면서 말이다.

단풍도 지고 낙엽이 뒹구는 11월 말이면 한 해 동안 연구소에서 죽어간 동물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린다. 실험용 흰쥐가 죽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부검을 강행해야 하는 연구자들의 쓰린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데서 그저 위안을 찾는다.

김형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평가센터 책임연구원 hckim@kribb.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