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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심규선]‘총련 이지메’는 일본의 수치다

입력 | 2006-08-21 03:00:00


1970년대 초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으로 일한 다메다 에이이치로 오비린대 교수는 이런 경험담을 털어놨다.

“서울일본인회가 충청도의 어느 고찰(古刹)로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다. 앞에 서서 경내의 긴 돌계단을 내려오던 젊은 상사 주재원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뒤에서 틈을 노리고 있던 초로의 한국인 남자에게 카메라를 날치기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이의 빠른 발을 이길 수는 없었다. 곧바로 붙잡혀 길바닥에 엎어졌고, 카메라는 도로 찾았다. 그러나 곤경에 빠진 것은 오히려 일본인 젊은이였다. 그는 주위에 있던 한국인들의 적의에 찬 시선을 받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엎드려 있던 날치기꾼은 재빨리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고 불같이 화를 냈다. 바지의 흙을 털고 일어서더니 일본인 청년에게 얼굴을 내밀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일본어였다. ‘이 자식들, 너희는 나라를 훔쳐 먹었잖아. 그까짓 사진기 한두 대 도둑맞았다고 불만을 얘기할 수 있어?’ 돌아오는 길의 전세버스는 침묵에 싸였다.”(월간 신동아 2005년 2월호, ‘일본 지식인이 본 한류’)

그 시절은 그랬다. 일본인에게 한국은 신변의 위협을 느낄 만큼 ‘험한 나라’였다. 다메다 교수는 “그래서 대사관 직원이나 상사 주재원도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경우가 적었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일본 총리가, 여러 차례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것도 광복절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예전 같으면 수십만 명이 몰려나와 대규모 규탄 대회를 열었을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본인이나 일본 상품 배척 움직임도 없다. 민간단체의 교류도 잘 돌아가고 있다. 정치권만이 흥분했을 뿐이다. 한국이 다양한 시각에서, 이른바 복안(複眼)으로 한일문제를 보기 시작한 때문일 것이다.

일본도 그런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난달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총련계 학생들에 대한 협박과 테러사건이 100건을 넘었다는 소식이다. 이지메가 뭔가. 만만한 상대를 골라, 별다른 잘못이 없는데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총련과 총련계 학생들에 대한 협박과 테러도 명백한 이지메다. 이를 방관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이지메를 용인하는 것이다.

북한이 미운 건 안다. 북한과 총련이 밀접한 관계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사일 발사에 총련이 무슨 책임이 있는가. 더욱이 일본 사회에서 총련은 약자다. “조센진은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일본이 더 잘 안다. 그런데도 어른들이 완력으로 총련계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찢고 겁을 주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오죽했으면 양식 있는 일본인들이 나서 ‘조선학교 학생들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자고 하겠는가.

1994년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했을 때, 1996년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총련계 여학생들은 곳곳에서 치마저고리를 찢기는 수모를 당했다. 1998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와 2002년 북한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상습적이다.

북한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북한과 총련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마찬가지로 총련도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다. 일본은 여전히 총련에도 빚을 지고 있다. 그런 사실엔 애써 눈을 감고, 북한을 빌미로 삼아 총련이나 총련계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역사인식이 결여된 강자의 횡포다. 한국에는 복안으로 한일문제를 보라고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여전히 단안(單眼)을 갖고, 질 낮은 화풀이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총련 이지메’는 일본의 국격(國格)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이런 일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고서 일본은 평화와 반성을 운위할 자격이 없다.

심규선 부국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