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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창혁]Character is Fate

입력 | 2006-02-04 03:06:00


철학과에 ‘적(籍)’을 둔 적은 있지만, 단 한번도 ‘철학을 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은 더더구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며 만물(萬物) 유전설(panta rhei)을 설파했다는 고등학교 때의 지식 정도였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인 척 헤이글의 글에서였다. 재작년 미국 대선 직전의 일이다.

헤이글 의원은 당시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공화당의 외교정책’이라는 글에서 미국은 독립 이래 자유와 번영, 평화의 중심세력을 자임해 왔다고 역설한 뒤 “성격은 곧 운명이다(Character is Fate)”라는 말을 던졌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경구(警句)였다.

캐릭터(Character)의 그리스어는 에토스(Ethos)다. 에토스는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윤리 도덕이라고 부르는 에틱스(Ethics)도 바로 이 에토스라는 말에서 나왔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경구는 이를테면 도덕적 정언명법(定言命法), 다시 말해 무조건적 양심의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다.

헤이글 의원은 그러니까 자유의 확산이라는 공화당의 외교정책을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도덕적 명령으로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Character is Fate”라는 말로 글을 끝맺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런 사람, 이런 지도자는 매우 다루기 힘들다. 정치를 정치로, 외교를 외교로 생각하지 않고 도덕적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지도자만큼 다루기 어려운 부류는 없다.

1일(한국 시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에서 유독 ‘character’라는 단어에 신경이 쓰인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헤이글 의원의 말을 그대로 되뇐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온정과 타인에 대한 배려로 ‘미국의 캐릭터’를 보여 주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연설의 행간엔 헤라클레이토스적 수명(受命)의식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연설문 말미에 이런 문장이 있다. “역사는 책에 기록되기 이전에, 용기로 쓰여진다(Before history is written down in books, it is written in courage).” 역사의 수명의식을 자기 캐릭터로 암시하는 정치지도자들이 곧잘 쓰곤 하는 말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세계를 향한 도덕적 명령에 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생각을 만든다. 특히 도덕적 정언명법은 강한 믿음을 만든다. 설사 그것이 허위의식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정언명법은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변환 외교(Transformation Diplomacy)’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폭정 종식은 오직 정권의 캐릭터를 바꿈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게 ‘변환 외교’다.

노무현(盧武鉉) 정권의 ‘386 핵심’들은 사회과학적 신념체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회과학으로는 잘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범주가 헤라클레이토스류(類)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