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겸 원내대표의 사의 표명으로 원내대표 직을 대행하게 된 원혜영 정책위의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여당 의원들이 같은 당 의원들의 입각에 반대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2일 개각을 발표한 청와대와 이에 반발하는 열린우리당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돌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직접 당을 설득하기로 했지만 상황은 예측 불허다.
▽“연판장 돌리자”=의원들이 크게 반발하는 대목은 정세균(丁世均) 의장을 예고 없이 ‘징발’한 부분. 재선 의원들은 3일 긴급 조찬모임을 열고 개각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모임을 주도한 이종걸(李鍾杰) 의원은 정 의장이 입각을 거부해야 한다는 취지의 연판장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재선 의원들은 동료 의원들의 설득을 받고 모임 자체를 취소했다.
한 의원은 “당의장이 웃으면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하겠다고 하는데 당이 참 우스운 꼴이 됐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은 개각을 주도한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청와대 참모진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장관 시키면 당 깨진다”=유시민(柳時敏) 의원의 입각에 반발하는 것은 주로 유 의원이 보여 온 튀는 언행과 매몰차고도 급진적인 이미지 때문이라는 게 동료 의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당 중진 의원은 “한마디로 유 의원이 당내 동료 의원들에 의한 다면평가에서 0점을 받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04년 12월 유 의원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유 의원은 국보법 존치를 주장한 같은 당 정장선(鄭長善) 의원과 우연히 마주치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면전에서 쏘아붙였다고 한다.
한 의원은 “당시 노 대통령이 국보법 폐지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여서 상당수 의원은 유 의원이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당시 유 의원 스스로도 자신을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노빠 주식회사 대표’라고 표현했다. 이후 상당수 의원은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청와대를 드나들며 궁정정치를 하고 있다”며 유 의원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유 의원이 속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유 의원의 ‘이중적 태도’와 관련된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해 정기국회 초반 한 동료 의원이 “부동산 대책 관련 각종 세법과 금융산업구조개선법 등 중요한 법안을 심의해야 한다”며 유 의원에게 법안심사소위원회 참석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 의원은 “나는 앞으로 (큰) 정치만 하겠다”며 소위 위원 등록조차 기피했다는 것. 지난해 11월경에는 학자 출신의 한 원로 의원이 그에게 “당분간 조용히 있다가 입각하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했다. 하지만 유 의원은 한참 연장자인 그에게 “그건 제가 선택할 문제죠”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유 의원의 입각에 반대하는 논리적인 이유도 많다. 무엇보다 유 의원의 언행과 부정적 이미지가 지금까지 당 지지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는 것. 중도 성향의 한 3선 의원은 “유 의원이 입각하게 되면 당 지지율이 5%는 떨어질 것”이라며 “일부는 당이 깨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 부적절론=‘유시민류(類)’의 정치 행보가 당 안팎에서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게 의원들의 인식이다. 한 초선 의원은 “장관이 되려면 상대방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유 의원은 너무 급진적이고 전투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선 의원도 “의원과 달리 장관은 조직의 수장”이라며 “어긋난 언행 한마디가 정부 정책 전체를 흔들 수 있어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소 중립적인 평가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독일에서 공부한 유 의원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걸로 알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동양적인 정서와 잘 맞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말 없는 유 의원=당이 요동치고 있지만 정작 논란의 핵심인 유 의원은 말이 없다.
그는 복지부 장관 발표 유보 결정이 내려진 2일 치과 임플란트 치료를 받고 지역구에 들러 신년 인사를 했으며 3일에도 지역구에 머물며 개인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의원 측은 “치과 치료를 받아 잇몸이 부은 상태라 말하기 곤란하며 유 의원 본인도 당분간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유 의원은 이 같은 대외용 입장과는 달리 자신에 대한 당내의 비토 분위기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 점에 초조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보좌진을 통해 동료 의원실에 “진퇴양난의 상황이어서 나도 미치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를 달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유 의원을 지지하는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대표인 이광철(李光喆) 의원은 “유 의원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싸가지가 없다’는 등 자신들의 선호만을 가지고 인사권자의 결정을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오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