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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發 ‘환경규제 해일’ 한국號 덮친다

입력 | 2005-12-26 03:09:00


《“1997년 중국에 공장을 세운 후 별별 어려운 일을 다 겪었지만 이번 환경 규제 강화는 극복할 길이 안 보입니다.”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 외곽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가죽가공 무역업체 ‘D피혁’의 중국 담당 조모 상무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피혁업종이 ‘반(反) 환경산업’이라는 이유로 중국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가공무역업체에 주던 관세 및 부가가치세 면제 혜택을 없애기로 했기 때문이다. 큰돈을 들여 오폐수 처리시설을 갖췄지만 예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세 등을 모두 내면 비용이 20% 이상 늘어 사실상 공장 폐쇄 위기를 맞은 셈이다. 수출업체나 해외 진출 국내 기업들이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강화되는 환경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앞 다퉈 환경 규제 강화 추세

“9월 말 지문인식기 1000대를 선적하려는데 독일 쪽에서 환경유해물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증명을 보내라는 연락이 왔어요. 유럽연합(EU)이 내년 7월 도입하는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수출은 보류됐고 내년 1월에야 수출 재개 여부가 결정 날 것 같습니다.”

지문인식제품을 수출하는 A중소기업 품질팀 김모 과장의 설명이다. 공인 인증기관에서 50여 개 부품의 환경유해물질 포함 여부 검사를 하느라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납품 기일도 4개월 이상 늦어져 큰 피해를 보게 됐다.

엔진과 연료탱크를 연결하는 고무호스를 미국에 수출해 온 C업체도 11월 미국 바이어로부터 수입 중단 통보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 환경규제위원회가 이 회사 제품을 환경유해제품으로 지정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

이 회사 생산담당 김모 부장은 “미국 기준에 맞춰 소재를 실리콘으로 바꾸면 생산단가가 5배로 뛰기 때문에 결국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중국 역시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2010년 상하이(上海) 엑스포를 앞두고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해외 자본을 무조건 환영하던 시대는 끝난 것.

KOTRA 동북아팀 양장석 팀장은 “중국은 유럽연합(EU) 수준의 환경 규제를 빠른 속도로 도입하면서 외국 기업에도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부담 전가에 ‘전전긍긍’

빠른 속도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EU는 올해 8월 전기전자제품의 수거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한 ‘폐전기전자제품처리지침(WEEE)’을 발효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은 한국 전기 전자업체가 이 기준에 맞추려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만 57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부터 새로 발효되는 각종 환경 규제에 대처하려면 수조 원대의 비용이 추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전기 전자업체들은 EU 환경 규제 강화에 맞춰 올여름 친환경 제품만을 생산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에 전가된다.

경기도에서 전자제품용 접착테이프를 생산하는 B업체는 대기업들이 친환경 제품 생산을 선언한 뒤 종류별로 30만∼40만 원씩 검사 비용이 들어가 생산비가 3∼5% 정도 늘었다.

B업체 수출팀의 박모 차장은 “대기업들은 친환경 제품 납품을 요구하면서도 납품가격은 올려 주지 않아 결국 중소기업이 추가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적 대응전략 필요하다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은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국 기업의 기술 수준이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한다. 즉 선진국의 환경 규제는 한국 등 제3국 기업의 경쟁력을 염두에 둔다는 뜻.

따라서 해외 환경 규제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정관용 팀장은 “일본은 ‘WEEE’나 ‘RoHS’ 등 EU의 새 환경 규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구주일본기업협의회’를 결성해 자국 기업의 이해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면서 “한국 기업 중 의견 개진을 한 곳은 대기업 한 곳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연구원 임동순 연구위원은 “한국의 성장률이 예전보다 낮아진 상태에서 강화되는 환경 규제는 경제와 기업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