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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소리 없는 혁명

입력 | 2005-12-20 03:09:00


장미혁명, 오렌지혁명, 튤립혁명을 기억하시는지? 2년 전 그루지야에서 시작해 우크라이나(2004년) 키르기스스탄(3월)을 휩쓴 민주화혁명 말이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그새 대법원장에 측근을 앉혀 법을 시녀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는 부패에 경제난, 혁명세력 간 내분까지 겹쳐 벌써 내각을 갈았다. 키르기스스탄의 불안한 정치 상황은 이웃 카자흐스탄의 반면(反面)교사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보다 풍요가 낫다”며 14년 장기 집권 대통령에게 7년을 더 안겨 줬다.

▷그 요란하던 혁명이 왜 시들었을까. 재건과 개발을 위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정치적 경쟁과 법치(法治)가 문제라고 했다. 무능한 정치인과 관료를 내쫓고 부패 인사를 처벌하는 ‘제도’ 없이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거다. 또 하나 중요한 게 경제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민심은 급격히 돌아선다. 과감한 경제 개방으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린 헝가리,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등은 혁명 없이도 번영으로 달려가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15년간 환자 취급 받던 일본도 요란함 없이 혁명에 성공한 모양이다. 아동용품이 잘 나가고, 여성용품과 애견용품이 움직이고, 남성용품까지 꿈틀하면 경기 회복이 확실하다는데 드디어 남성복이 팔린다는 소식이다. ‘잃어버린 10년’간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비를 쏟아 부으며 정치 경제의 거품을 걷어 낸 결과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몰래 한 혁명(stealthy revolution)’이라고 했다.

▷일본은 1990년대 막대한 공공부문 지출로 경제를 살리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경쟁과 탈(脫)규제, 노동시장 유연화 등 꼭 필요한 변화를 거부해 병치레가 길었다. ‘일본 학생한테 공산주의 배울까 봐 중국 유학생들이 같이 안 논다’는 농담이 말해 주듯, 뿌리 깊은 금융 사회주의(financial socialism)를 털어내는 게 과제다. 옛 소련 지역의 실패한 민주화혁명, 일본이 한때 실패했던 경제혁명의 길을 한국은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