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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남성욱]北核실타래 못푼 장관급 회담

입력 | 2005-12-20 03:09:00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끝으로 올해 남북 당국 간 회담은 모두 끝났다.

비행기 출발을 늦추면서까지 도출한 9개 항의 합의문은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지만 미흡한 점도 많았다. 북측이 북한인권국제대회와 미국의 대북 압박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회담에 응해 공동 보도문을 낸 일 자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과거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내세워 남측과 대화를 거부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다.

그러나 회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정부가 고심한 군사회담 개최는 여전히 원점을 맴돌았고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 문제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남측은 지금까지 방북 시 참관 장소를 제한해 왔다. 북측은 남측의 이 방침을 없애는 것이 이번 회담 참가의 결정적 목적인 양 집착했다. 국립묘지 참배를 계기로 금수산기념궁전과 혁명열사릉 참배를 공식화하는 것이 통일전선전술 활용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남측은 당국 간 회담을 통해서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오리무중이었다. 물론 북핵을 해결하는 문제에서 당국 간 회담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서울 평양 간에 교감이 활발해 혹시나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예상대로 당국 회담과 북핵은 궁합이 맞지 않는 의제였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이 조속히 이행되어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는 2항은 서비스 차원의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6자회담 참가를 권유하겠다는 남측 대표의 의욕은 과욕에 불과했다.

6자회담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수석대표들의 회동을 추진했던 남측의 의도는 당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은 방안이었다. 회담이 제주도에서 개최되면 차기에는 다른 장소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며, 북측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장소라도 중국의 베이징(北京)보다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결국 자신들의 최대 후원국인 중국의 베이징 이외에 어떤 장소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남측의 구상은 발상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이의 제기로 이상적인 공론에 그쳤다.

장관급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에 명백한 한계를 노출했다. 결국 장관급회담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됨에 따라 북핵 사태는 내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장기화 및 중간선거 등 어려운 국내 정치 여건 때문에 병술년(丙戌年) 새해에도 이란, 북한 등 테러 위험 국가에 대한 압박 정책을 계속할 것이다. 위조지폐와 마약 밀수, 인권 등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위반 사례 제시 및 국제사회 여론 환기 등 다양한 대북 공략이 전개될 것이다.

이를 통해 군사 분야의 양보를 받아낸다는 정책이 구체화됨에 따라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의 조기 개최는 어려워졌다. 북한은 금융 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면 회담에 참가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바꾸지 않고 오히려 미국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어느 한쪽이 견해를 바꾸지 않는다면 북핵 사태는 다시 장기적으로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방위적 비군사 분야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은 과거와 달리 말을 아끼며 미국의 전략을 주시하고 있다. 일단 자신들이 만족한 9·19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는 미국의 공세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복안이다. 북한의 침묵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소나기를 피하자는 지연전술일 수도 있고, 다른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기 위한 시간 벌기 전략일 수도 있다. 새해에는 북-미 상호 간의 일보 후퇴로 한반도가 북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지만 낙관론이 현실화되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잠복해 있다. 병술년 극적 반전을 기대해 본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 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