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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첫 단독 인터뷰]“모든건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

입력 | 2005-12-19 03:01:00

고건 전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개인사무실에서 한국의 미래전략 리더십과 국정 현안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고 전 총리가 지난해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다. 김경제 기자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가 18일 국정 현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난해 탄핵 정국 때 63일간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국가 비상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퇴임한 이후 약 1년 7개월 만에 본보와 첫 단독 인터뷰를 한 것. 고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협조를 얻는 쪽으로 노력해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가 돼야 한다.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정부가 되면 대한민국이 실패하고 국민이 실패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해 오던 고 전 총리가 본보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것은 지난달 중순경이었으나 미국 방문 등으로 인해 일정이 다소 늦춰졌다. 인터뷰는 본보 이진녕(李進寧) 정치부장이 대담하는 형식으로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과 ‘시중(時中)’론

―최근 퇴임 후 국내 첫 강연에서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을 강조했는데….

“경제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청년실업은 심각한 수준이다.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서 꿈을 가지고 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적 의미에서의 실용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한 개혁은 구호이고 이념에 빠진 것이다.”

―10년 후 한국의 성장동력은….

“한국의 미래전략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앞으로 10년 내에 세계 10대 경제강국(G10)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5.4%의 성장률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면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4000달러 정도에서 3만4000∼3만5000달러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목표를 갖고 성장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이 있나.

“내적으로는 내수투자 부진, 그리고 외적으로는 ‘비용의 중국’, ‘효율의 일본’ 사이에 낀 상황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정부의 경제 마인드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정부 정책의 예측가능성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성장과 분배 중 어느 쪽에 치중해야 하나.

“‘시중’이라는 말이 있다. 성장과 분배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지만 정확하게 중간은 아니다. 어느 때는 분배, 어느 때는 성장이 중요하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느 때는 평준화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수월성 교육이 필요하다. 그게 시중이다. 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지금은 성장이 중요한 때다.”

○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 문제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도 할 말은 해야 한다. 한국으로 오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을 강제 송환시키는 것은 가혹하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문제 등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협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하니까 여당이 펄쩍 뛰고 심지어 소환절차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주한 미국대사의 비외교적 발언에 비외교관들이 비외교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닌가. 외교통상부에 맡기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 구속 문제에 대한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온당했나.

“마치 정부가 강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는 잘못됐다. 강 교수 문제나 맥아더 동상 철거 시도에 대해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념 대립이 심화됐다.”

○ 헌법 영토조항 바꾸면 북한 돌발사태에 발언권 제약

―개헌 문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임기 5년과 국회의원 임기 4년의 최소공배수는 20년으로 20년마다 한 번씩 두 임기가 일치하는데 그게 2008년 아닌가.”

―2008년까지 개헌하려면 내년부터 개헌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얘긴가.

“역산해 보면 나오지 않겠나.”

―헌법 영토조항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만약 영토조항 손질했다가 북한에 무슨 돌발사태가 났을 때 대한민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토 주장에 굉장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때 우리가 한반도 안정을 위해 참여할 수 있는 발언권에 상당한 제약이 될 수 있다.”

○ 행정중심복합도시 차기 정권에서도 추진해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정책이 옳다고 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이상 재론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가.

“그것이 상도(常道), 정도(正道)라고 본다.”

―현 정부의 대언론 정책은….

“어떤 의미에서 정부와 언론은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파트너십 관계라고 본다. 정부는 언론의 본연의 기능인 비판 감시자 역할을 존중해줘야 한다.”

―최근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을 어떻게 보나.

“정부나 연구기관 쪽에 자체 검증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있어야 한다.”

○ 정자정야(政者正也·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

―오랫동안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고 전 총리의 지지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내부적으로 그 이유를 분석해 봤나.

“그런 거 해본 적 없다. 언론에서 분석해 주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지지율 기사는 보는가.

“나도 사람이니까….”

―내년 5월 지방선거 있는데 그때는 어떤 역할을 하나.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

―다음 대선 구도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고 전 총리를 변수로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허허 웃으며) 좌우간 정말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국민으로서의 일반적 바람이 있다. 정자정야다. 정치가 올바로 돼야 모든 것이 올바르게 된다.”

정리=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난 李시장처럼 홍보하는 스타일 아니다”▼

고건 전 총리는 향후 대선 행보와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꺼렸다.

“대통령 임기가 2년 이상 남아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고, 현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국가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강조하며 우회적으로 ‘권력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열국지(列國志)’를 인용하며 “열국지에는 온갖 유형의 리더십이 다 나오는데 결론은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는 리더십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리더십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게 2000년 동안 내려온 역사적 교훈이다”고 밝혔다.

또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이 ‘청계천 효과’에 따라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시제와 홍보의 문제다. 내가 한 일(서울을 세계 5대 지하철 도시로 만든 것, 내부순환도로와 월드컵경기장 건설, 서울시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 등 부패방지 시스템 도입)은 과거완료형이고 그쪽은 현재진행형이다. 또 스타일 차이다. (뭘 했다고 홍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내 스타일이 좀 그렇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너무 신중한 스타일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5·17비상계엄확대조치 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직 사표를 낸 사실과 탄핵 정국 후 총리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점 등을 예로 들며 “결단할 시점에는 반드시 결단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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